
이동원 목사의 십계명 강해설교
이동원십계명, 이 단어의 뉘앙스가 어떤 이에게는 진부한 낡은 세월의 도덕률로, 어떤 이에게는 영화나 신화 속의 허상처럼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의 교회 생활에서 십계명은 망각될 수 없는 계속적인 메세지로 찾아 오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오늘을 사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십계명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저는 다시 시내 산을 찾았습니다. 거기서 나의 사랑하는 야훼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이 십계명은 ‘이렇게 살라’고 선언하는 말씀이 되어 펄펄 끓어오르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이 뜨거움을 가지고 강단에 서서 열한 주 동안 이 말씀을 증거하는 가운데 성령님은 많은 성도들의 가슴을 찢었고, 고쳤고 그리하여 그들의 삶을 다시 만들었습니다. 나의 부족, 나의 인간성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쓰시는 주님의 말할 수 없는 그 은혜를 감사하면서 시내 산의 열기가 다 식기 전에 활자에 담아 좀더 깊은 고요 속에서 이 말씀을 받아야 할 어느 심령들을 위해 기도하여 이 메시지를 드립니다.
도시의 공해와 매연 속에 가라앉고 있는 이십 세기의 소돔과 고모라인들에게도 시내 산의 새벽은 여전히 신선하고 아름답 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의 교회 생활에서 십계명은 망각될 수 없는 계속적인 메세지로 찾아 오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오늘을 사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십계명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저는 다시 시내 산을 찾았습니다. 거기서 나의 사랑하는 야훼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이 십계명은 ‘이렇게 살라’고 선언하는 말씀이 되어 펄펄 끓어오르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이 뜨거움을 가지고 강단에 서서 열한 주 동안 이 말씀을 증거하는 가운데 성령님은 많은 성도들의 가슴을 찢었고, 고쳤고 그리하여 그들의 삶을 다시 만들었습니다. 나의 부족, 나의 인간성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나를 쓰시는 주님의 말할 수 없는 그 은혜를 감사하면서 시내 산의 열기가 다 식기 전에 활자에 담아 좀더 깊은 고요 속에서 이 말씀을 받아야 할 어느 심령들을 위해 기도하여 이 메시지를 드립니다.
도시의 공해와 매연 속에 가라앉고 있는 이십 세기의 소돔과 고모라인들에게도 시내 산의 새벽은 여전히 신선하고 아름답 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