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미를 사랑하는 남자 2/2
이지환(자작나무)장미를 사랑하는 남자는 푸른달을 걷다의 남주 무형을 거부하고 프랑스 귀족 가문의 아르젤과 사랑을 쟁취하는 가린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본문 중에서
창가로 가서 역광을 지고 그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싱긋 미소지으며 검게 변한 연적의 절망을 즐겼다. 곧 죽어도 사랑하는 여자를 가질 수 없는 그를 연민했다. 이 순간, 무형이 아니라 아르젤이 잔인한 강자였다.
“난 내 사랑하는 여자가 햇살 아래서 살아가기를 바래. 늘 아름다운 그녀에게 어울리는 환한 웃음을 머금고서 파랑새처럼 자유롭고 장미꽃처럼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그래, 나 또한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야. 회의(懷疑)에 빠진 적도 있었지. 솔직하게 말한다면, 난 그녀가 네 놈 곁에 있는 것이 더 행복하다면 조용히 물러날 생각도 없지 않았어. 하지만 보면 볼수록 넌 아니군. 네 옆에 백 년이나 있어본들 내 여자는 절대로 행복해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닥쳐. 닥쳐!”
“넌 네 자신이 아주 잔인하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난 더 잔인할 수 있어. 칭허 뮈렌. 분노하는 검은 용이여. 넌 그래 보았자 결국 어둠의 자식이 아닌가? 네 곁에 리니를 두어보았자, 그녀에게 줄 것이라고는 조직 폭력배의 아내라는 타이틀이 아닌가?”
혹시나 적에게 죽음이나 당하지 않을까 항상 등뒤를 조심하고 노심초사 해야 하는 삶. 적에게 무참한 복수를 당해야 하는 제 1의 타깃으로 살아가면서 몇 겹의 벽안에서 쇼핑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친구도 사귈 수 없는 그런 삶을 주겠다면서 무엇 그리 잘난 척을 하는가? 멍청아! 아르젤은 고함을 꽥 지르고 싶었다.
만약 무형 옆에서 가린이 행복하다면 아르젤은 웃으며 그녀를 보내줄 수 있었다. 행복하라 진심으로 축복하고 손을 놓아줄 수 있었다. 하지만 가린은 그의 옆이어야 행복한 여자였다. 휘젤성의 대지 안에서만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여자를 고독하고 어두운 삶의 덫 안에 방치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르젤은 검은 용의 성벽을 타고 올랐다. 가린을 구하러 나선 기사가 되었다.
“내 여자가 그렇게 살면서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나? 아니, 리니는 절대로 그렇게 살 수도 없고 그렇게 살아서도 안 되는 여자야. 그녀는 나무와 꽃이 있는 곳에서만 행복한 여자지. 음습한 어둠이 아니라 환한 남국의 태양아래서 자유롭게 웃으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행복한 여자라고. 그런데 넌 죽었다 깨어나도 내 여자에게 그런 행복 같은 건 주지 못해. 안 그래? 그런데 겁도 없이 감히 리니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여자를 아프게 하고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게 네 사랑의 방법인가? 네놈은 사랑을 늘 그런 식으로 증명하는가?”
아르젤은 거짓말처럼 무형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분노도 증오심도 없다. 아름다운 황금빛 눈동자에 서려있는 건 다만 무형에 대한 연민 혹은 그를 가엾게 여기는 슬픔 같은 것이었다.
“난 가린의 집에 갔었지. 그리고 들었다. 네가 가린 때문에 결국은 그렇게 벗어나고자 하는 어둠 속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하지만 그 결정 때문에 넌 가린을 영원히 잃게 된 거야. 넌 지금 그녀에게 떼를 쓰고 있는 거나 다름없어. 리니 때문에 네가 하기 싫은 일을 하게 되었으니 그 보상을 하라고 말이야! 하지만 리니가 너더러 그렇게 하라고 언제 말했지? 그녀가 너에게 희생하라고 말한 적이 있던가? 결국 넌 네가 좋아서 그 모든 일을 해놓고 그 책임을 리니에게 뒤집어씌운 게 아닌가? 정무형. 넌 리니를 사랑하는 게 아니야. 넌, 사랑의 제일 법칙이 뭔지 아직 모르니까. 사랑의 제일 법칙은 사랑하는 그 사람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삼는 거야. 그러나 넌 오히려 그녀를 위험에 빠뜨리려고 하고 슬픔에 잠기게 하고 수치심에 젖게 하고 그리고 아프게 했어, 내가 아는 한, 그건 사랑이 아니야. 내가 너에게 묻는다, 정무형. 대답해! 그것이 네 잘난 사랑의 실체인가? 그 것이 네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여자에 대한 최선인가?”
휙 바람소리를 내며 서슬 푸른 단도가 아르젤의 목 옆으로 와서 박혔다. 일 센티만 더 비켜났으면 그 자리에서 아르젤은 목줄이 끊어져 피를 뿜으며 죽었을 것이다. 아르젤은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조용히 내뱉었다.
“나라고 해서 이 모든 것이 두렵지 않은 게 아니지. 사실은 죽도록 두려워. 도망가고 싶어. 하지만 난 그러지 않아.”
“말해! 네 놈 뒤에 있는 게 뭔지! 무엇을 믿고 이렇게 까불고 내 앞에서 당당한 것인지 말해!”
“……가진 것 없는 빈털터리인 내가 무엇을 믿고 네 앞에 그렇게 당당한가 그게 궁금한 건가? 난 나 자신을 믿는다. 한 점 부끄러움 없고 당당한 내 사랑을 믿어. 이 세상에서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을 믿기에 난 두렵지 않은 거다. 그것을 아직도 모르다니, 아아. 당신은 얼마나 불쌍한 남자인가.”
돌아서는 무형의 등뒤에 대고 나직하게 말했다. 아르젤의 당당한 선전포고였다.
“난 떠나지만 반드시 다시 돌아올 거야. 정무형. 그땐 네 스스로 나의 아내를 데려다 주게 될 거야. 장담하지. 왜냐하면 나처럼 당신도 그 여자를 너무나 깊이 사랑하고 있으니까. 너 또한 그녀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람일 테니까! 좋아. 너무나 귀한 내 장미꽃을 잠시 당신에게 맡겨 두기로 하지. 내가 돌보아 주지 못하는 이상 가린은 당신 옆에 있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할 테니까. 하지만 그녀의 주인은 바로 나야. 당신이 아니라! 그것만 기억해 두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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