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마의 거래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책 소개>
괴테에게 파우스트가 있다면, 발자크에게는 멜모스가 존재했다.
늦은 금요일 오후 5시, 늙은 은행원 카스터니어가 혼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그때 잠긴 문 사이로 창백한 얼굴의 남자가 들어 와서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기를 원한다. 사실 카스터니어는 불륜녀와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위해서 수표를 위조 중이었지만, 그 남자의 기이한 눈빛에 위주 수표를 모두 불태운다. 그리고 잔뜩 빚을 진 채 외국으로 도피하려는 그의 뒤를 창백한 남자가 뒤쫓는다. 그는 어디에도 있는 것 같다.
악마와 거래한 남자에 대한 발자크의 이야기. 사랑과 욕망, 구원의 본질을 꿰뚫는 소설.
<미리 보기>
어둑어둑한 가을의 오후, 정확히 5시에 파리의 가장 큰 은행 중 한 곳에서 출납원이 책상에서 일하고 있었다. 바로 전 켠 등불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가 숫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상업적 기술과 관례에 근거해서, 그 회계 사무실은 건물 중 가장 어두운 구석에 낮은 천장을 가지고, 메짜니 층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했다. 그곳으로 가는 복도에는 오직 간접 조명만이 존재했다. 복도를 따라서 늘어선 사무실 문마다 명칭이 적혀 있었고, 언뜻 보면 욕실이나 화장실처럼 보이기도 했다. 4시에 완고한 수위가 은행이 닫혔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그 즈음 부서 전체가 비워졌고, 발송해야 할 모든 서류가 밖으로 옮겨졌으며 모든 직원들이 자리를 떴다. 은행 이사들의 부인은 사랑하는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고, 은행 임원 두 명은 불륜의 대상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정상적이었다.
혼자 남은 출납원이 바쁘게 일하고 있는 좁은 폐쇄형 사무실 뒤로 소형 금고들이 강철판 위에 놓여 있었다. 그는 회계 장부를 결산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열린 앞문 사이로 강철로 짜맞춘 만든 금고의 일부가 보였다. 강도들이 들고 갈 수 없도록 육중한 무게를 가진 금고였다. 금고의 문은 암호를 아는 사람만이 열 수 있었고, 글자로 이뤄진 잠금 장치는, 뇌물이 통하지 않는 정직한 관리자 역할을 했다. 글자로 이뤄진 암호는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열려라, 참깨'를 현대적 기술로 구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강도가 암호를 안다고 하더라도 잠금 장치의 마지막 비밀 - 기계 공학이 만들어낸 황금용이 지키는 최종 수단 - 을 깨뜨리지 못하면 그의 머리로 총이 발사되었다.
그 방의 문과 벽, 창문의 창틀, 이 모든 것들이 10센티미터 두께의 강철판으로 보강되어 있었고, 그 강철판을 나무판이 싸고 있었다. 창문과 창틀이 잠기고 창살이 올라왔으며 문 역시 닫혔다. 절대적으로 혼자 있으며, 누구도 그를 노려보는 시선으로 바라 보고 있지 않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 그곳은 루 생라자레 구역의 누치겐 은행의 회계 사무실이었다.
강철로 만든 동굴 속으로 고요함이 내려 앉았다. 난로의 불은 사그라졌지만, 방 안에는 미지근한 열기가 남아 있었다. 마치 밤새도록 계속된 파티 다음 날 아침의 두통과 메스꺼움처럼 느껴지는 열기였다. 난로는 마치 최면술사처럼 은행 직원들을 멍한 상태로 만드는 역할을 했다.
난로가 있는 방은, 강한 사람들의 힘조차 허공으로 흩어져 버리도록 만드는 일종의 증류기였다. 사람들의 활력이 소진되고, 의지가 약해졌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금융 분야에서 낡은 봉건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수단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정부 역시 큰 역할을 했다. 복잡한 방 안에서 풍기는 악취가 직원들의 지능을 저하시키고, 긴 시간의 측면에서 그들의 두뇌를 질식사시켰다.
그 방의 출납원은 45세 정도의 남자였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었고, 그의 머리 위로 조절이 가능한 등불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금속 빛 회색의 머리카락이 불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벗겨진 머리와 동그란 그의 얼굴 때문에 그의 윤곽 전체가 둥근 공처럼 보였다. 창백한 붉은색의 얼굴과 그 위의 주름이 눈 주위에 몰려 있었고, 통통하고 부드러운 손이 그의 몸집에 잘 어울렸다. 구겨지고 닳은 파란색 외투와 잘 다려져서 뻣뻣한 바지, 세탁을 통해서도 지울 수 없었던 얼룩 때문에, 그를 피상적으로 관찰한 사람이라면, 그가 검소하고 올곧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거친 옷을 입은 철학자나 예술가의 느낌을 주는 남자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잔돈을 아끼는 사람들은 나약하고 방탕하며 삶의 중요한 순간에 무능함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 출납원은 단추 구멍에 예비역 명예 훈장의 띠를 달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에 황제가 존재하던 시절 용기병 대령이었다. 그의 고용인, M. 드 누치겐은, 은행가가 되기 전에 청부 용병으로 일을 했었다. 누치겐은 그 출납원이 군대 고위직에 있지만 곧 명예 제대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령에게 벌어진 불운한 일을 알고 있었던 은행가는 그에게 한달에 500프랑을 제공하기로 하고 그를 채용했다. 그래서 이 군인은 1813년 출납원이 되었다. 그 전에 그는 모스크바에서 후퇴하다가 입은 부상에서 막 회복했고, 이후에는 황제의 명령에 의해서 스트라스부르크에서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보내면서 황제의 측근들에 의해서 감시를 당하면서 지냈다. 마침내 그는 대령 직급으로 명예 제대를 했으며, 1년에 2,400 프랑의 연금을 약속 받았다. 그의 이름은 카스터니어였다.
괴테에게 파우스트가 있다면, 발자크에게는 멜모스가 존재했다.
늦은 금요일 오후 5시, 늙은 은행원 카스터니어가 혼자서 업무를 보고 있다. 그때 잠긴 문 사이로 창백한 얼굴의 남자가 들어 와서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기를 원한다. 사실 카스터니어는 불륜녀와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위해서 수표를 위조 중이었지만, 그 남자의 기이한 눈빛에 위주 수표를 모두 불태운다. 그리고 잔뜩 빚을 진 채 외국으로 도피하려는 그의 뒤를 창백한 남자가 뒤쫓는다. 그는 어디에도 있는 것 같다.
악마와 거래한 남자에 대한 발자크의 이야기. 사랑과 욕망, 구원의 본질을 꿰뚫는 소설.
<미리 보기>
어둑어둑한 가을의 오후, 정확히 5시에 파리의 가장 큰 은행 중 한 곳에서 출납원이 책상에서 일하고 있었다. 바로 전 켠 등불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가 숫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상업적 기술과 관례에 근거해서, 그 회계 사무실은 건물 중 가장 어두운 구석에 낮은 천장을 가지고, 메짜니 층에서 가장 먼 곳에 위치했다. 그곳으로 가는 복도에는 오직 간접 조명만이 존재했다. 복도를 따라서 늘어선 사무실 문마다 명칭이 적혀 있었고, 언뜻 보면 욕실이나 화장실처럼 보이기도 했다. 4시에 완고한 수위가 은행이 닫혔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그 즈음 부서 전체가 비워졌고, 발송해야 할 모든 서류가 밖으로 옮겨졌으며 모든 직원들이 자리를 떴다. 은행 이사들의 부인은 사랑하는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고, 은행 임원 두 명은 불륜의 대상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정상적이었다.
혼자 남은 출납원이 바쁘게 일하고 있는 좁은 폐쇄형 사무실 뒤로 소형 금고들이 강철판 위에 놓여 있었다. 그는 회계 장부를 결산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열린 앞문 사이로 강철로 짜맞춘 만든 금고의 일부가 보였다. 강도들이 들고 갈 수 없도록 육중한 무게를 가진 금고였다. 금고의 문은 암호를 아는 사람만이 열 수 있었고, 글자로 이뤄진 잠금 장치는, 뇌물이 통하지 않는 정직한 관리자 역할을 했다. 글자로 이뤄진 암호는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열려라, 참깨'를 현대적 기술로 구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강도가 암호를 안다고 하더라도 잠금 장치의 마지막 비밀 - 기계 공학이 만들어낸 황금용이 지키는 최종 수단 - 을 깨뜨리지 못하면 그의 머리로 총이 발사되었다.
그 방의 문과 벽, 창문의 창틀, 이 모든 것들이 10센티미터 두께의 강철판으로 보강되어 있었고, 그 강철판을 나무판이 싸고 있었다. 창문과 창틀이 잠기고 창살이 올라왔으며 문 역시 닫혔다. 절대적으로 혼자 있으며, 누구도 그를 노려보는 시선으로 바라 보고 있지 않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 그곳은 루 생라자레 구역의 누치겐 은행의 회계 사무실이었다.
강철로 만든 동굴 속으로 고요함이 내려 앉았다. 난로의 불은 사그라졌지만, 방 안에는 미지근한 열기가 남아 있었다. 마치 밤새도록 계속된 파티 다음 날 아침의 두통과 메스꺼움처럼 느껴지는 열기였다. 난로는 마치 최면술사처럼 은행 직원들을 멍한 상태로 만드는 역할을 했다.
난로가 있는 방은, 강한 사람들의 힘조차 허공으로 흩어져 버리도록 만드는 일종의 증류기였다. 사람들의 활력이 소진되고, 의지가 약해졌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금융 분야에서 낡은 봉건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수단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정부 역시 큰 역할을 했다. 복잡한 방 안에서 풍기는 악취가 직원들의 지능을 저하시키고, 긴 시간의 측면에서 그들의 두뇌를 질식사시켰다.
그 방의 출납원은 45세 정도의 남자였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었고, 그의 머리 위로 조절이 가능한 등불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금속 빛 회색의 머리카락이 불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벗겨진 머리와 동그란 그의 얼굴 때문에 그의 윤곽 전체가 둥근 공처럼 보였다. 창백한 붉은색의 얼굴과 그 위의 주름이 눈 주위에 몰려 있었고, 통통하고 부드러운 손이 그의 몸집에 잘 어울렸다. 구겨지고 닳은 파란색 외투와 잘 다려져서 뻣뻣한 바지, 세탁을 통해서도 지울 수 없었던 얼룩 때문에, 그를 피상적으로 관찰한 사람이라면, 그가 검소하고 올곧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거친 옷을 입은 철학자나 예술가의 느낌을 주는 남자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잔돈을 아끼는 사람들은 나약하고 방탕하며 삶의 중요한 순간에 무능함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 출납원은 단추 구멍에 예비역 명예 훈장의 띠를 달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에 황제가 존재하던 시절 용기병 대령이었다. 그의 고용인, M. 드 누치겐은, 은행가가 되기 전에 청부 용병으로 일을 했었다. 누치겐은 그 출납원이 군대 고위직에 있지만 곧 명예 제대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대령에게 벌어진 불운한 일을 알고 있었던 은행가는 그에게 한달에 500프랑을 제공하기로 하고 그를 채용했다. 그래서 이 군인은 1813년 출납원이 되었다. 그 전에 그는 모스크바에서 후퇴하다가 입은 부상에서 막 회복했고, 이후에는 황제의 명령에 의해서 스트라스부르크에서 하는 일 없이 시간만 보내면서 황제의 측근들에 의해서 감시를 당하면서 지냈다. 마침내 그는 대령 직급으로 명예 제대를 했으며, 1년에 2,400 프랑의 연금을 약속 받았다. 그의 이름은 카스터니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