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역사와 문명 유고슬라비아 해체와 발칸분쟁
유재욱1991년 시작된 유고슬라비아 해체와 이어진 발칸분쟁은 20세기 말 유럽에서 발생한 가장 비극적인 민족 간 충돌이었다. 티토 사후 유고연방의 권력공백, 820%에 달하는 하이퍼인플레이션과 같은 경제위기, 세르비아 민족주의의 부활은 연방을 구성하던 6개 공화국의 분열로 이어졌다. 특히 밀로셰비치의 대세르비아주의는 슬로베니아 10일 전쟁, 크로아티아 독립전쟁, 보스니아 내전, 코소보 사태로 이어지는 연쇄적 무력충돌의 도화선이 되었다.
스레브레니차에서 8000여 명의 보스니아계 무슬림이 학살되고, 사라예보가 1425일간 포위되었으며,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가 포격을 받는 등 전쟁의 참상은 국제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2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고, 보스니아에서는 조직적인 인종청소가 자행되었다. 이는 결국 NATO의 군사개입,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의 설립, 데이턴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졌으나, 발칸반도의 깊은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다.
세르비아 정교회, 크로아티아 가톨릭, 보스니아 이슬람으로 대표되는 종교적 차이와 복잡한 민족 구성은 분쟁의 근본 원인이 되었다. 이 책은 유고연방 해체의 정치경제적 배경부터 전쟁의 전개과정, 국제사회의 대응, 전후 복구와 화해 노력까지를 상세히 다룬다. 특히 라첵 학살, 투니토 터널 건설, RECOM 이니셔티브와 같은 구체적 사례를 통해 발칸분쟁의 본질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다.
스레브레니차에서 8000여 명의 보스니아계 무슬림이 학살되고, 사라예보가 1425일간 포위되었으며,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가 포격을 받는 등 전쟁의 참상은 국제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2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고, 보스니아에서는 조직적인 인종청소가 자행되었다. 이는 결국 NATO의 군사개입,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의 설립, 데이턴 평화협정 체결로 이어졌으나, 발칸반도의 깊은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다.
세르비아 정교회, 크로아티아 가톨릭, 보스니아 이슬람으로 대표되는 종교적 차이와 복잡한 민족 구성은 분쟁의 근본 원인이 되었다. 이 책은 유고연방 해체의 정치경제적 배경부터 전쟁의 전개과정, 국제사회의 대응, 전후 복구와 화해 노력까지를 상세히 다룬다. 특히 라첵 학살, 투니토 터널 건설, RECOM 이니셔티브와 같은 구체적 사례를 통해 발칸분쟁의 본질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