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재가 일으킨 문명 2문명의 본질은 너희 안에 있다 : 내면화 된 임재의 서사
다윗의장막프롤로그
세계의 역사는 결국 한 사람의 이야기이며, 한 사람의 내면은 곧 세계의 운명을 담고 있다. 이제 그대는 세계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는가? 이는 다름 아닌, 바로 그대 자신의 이야기니라.
그 분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곧 성전이니라”.
우리는 그 분의 이 말씀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기 전까지는 자유를 알수도, 얻을수도 없으며, 한 민족이나 국가 역시 이러한 자유의 숨결이 없이는 그 존재의 존속이 고통과 파멸의 연속 일수밖에 없다.
왜 문명은 무너지는가?
사람들은 종종 문명을 말할 때, 그 눈부신 외벽을 먼저 본다. 하늘 높이 솟은 돔, 정교한 계단식 탑, 사방으로 뻗은 무역로와 법령의 조문들. 그러나 문명은 외형이 아니다. 진정한 문명은 그 심장 속에 무엇이 임재하고 있었는가에 달려 있다.
하나님이 떠난 성소는 아무리 정금으로 입혀져 있어도 이미 무너진 것이며, 영혼이 깃들지 않은 제국은 아무리 오래 지속되어도 이미 쇠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는 피라미드를 남겼고, 바벨론은 계단식 탑을 세웠으며, 그리스는 지성을 조각했고, 로마는 법을 제도화했으며 중국은 질서를 글로 새겼고, 인도는 침묵 속에 영원을 묵상했다. 그러나 이들은 사람의 정신이 외부로 확장되던 시대의 흔적이지, 임재가 머무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회복한 흔적은 아니다.
문명이 영원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모든 체계와 찬란함이 하나님의 임재 없이 세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임재 없이도 풍요는 올 수 있으며, 질서 없이도 정복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 중심에 살아 계신 분이 계시지 않을 때, 그 문명은 결국 자기 무게에 짓눌려 안으로부터 무너지게 된다.
역사는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임재를 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갈림길에서 철과 돌이 섞이지 않듯이 그저 그렇게 분리되는 과정의 연속이다.
이슬람은 율법을 품었으나, 그 율법은 살아 있는 하나님을 가두었고, 중국은 예와 조화를 추구했으나, 그 질서엔 인격적 소명이 없었으며, 인도는 영원의 침묵을 바라보았으나, 그 침묵은 생명의 부름을 외면했다.
이들 모두, 시간과 자원과 철학과 미학이 주어졌던 문명들. 그러나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선다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그들은 기회를 놓쳤다.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고, 연결이 세계를 하나로 묶는 이 시기에, 거대한 덩어리로 존재하는 문명은 방향을 잃고 깨어난 한 사람들로 구성된 내면의 공동체만이 그 다음 문명을 세울 수 있는 문이 된다.
문명은 건축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거하시는 살아 있는 성전이다. 그 성전이 곧 한 사람의 심령이며, 그 심령 안에 다시 불이 붙을 때 비로소 역사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기록하고 또 질문을 해본다.문명은 어떤 힘에 의하여 존속하는가? 아니,더 깊은 질문은 이것이다.
그대는 그 임재 앞에 서 있는가?그리고 그대는 그분이 거하실 성전이 되었는가?
세계의 역사는 결국 한 사람의 이야기이며, 한 사람의 내면은 곧 세계의 운명을 담고 있다. 이제 그대는 세계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는가? 이는 다름 아닌, 바로 그대 자신의 이야기니라.
그 분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곧 성전이니라”.
우리는 그 분의 이 말씀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기 전까지는 자유를 알수도, 얻을수도 없으며, 한 민족이나 국가 역시 이러한 자유의 숨결이 없이는 그 존재의 존속이 고통과 파멸의 연속 일수밖에 없다.
왜 문명은 무너지는가?
사람들은 종종 문명을 말할 때, 그 눈부신 외벽을 먼저 본다. 하늘 높이 솟은 돔, 정교한 계단식 탑, 사방으로 뻗은 무역로와 법령의 조문들. 그러나 문명은 외형이 아니다. 진정한 문명은 그 심장 속에 무엇이 임재하고 있었는가에 달려 있다.
하나님이 떠난 성소는 아무리 정금으로 입혀져 있어도 이미 무너진 것이며, 영혼이 깃들지 않은 제국은 아무리 오래 지속되어도 이미 쇠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는 피라미드를 남겼고, 바벨론은 계단식 탑을 세웠으며, 그리스는 지성을 조각했고, 로마는 법을 제도화했으며 중국은 질서를 글로 새겼고, 인도는 침묵 속에 영원을 묵상했다. 그러나 이들은 사람의 정신이 외부로 확장되던 시대의 흔적이지, 임재가 머무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회복한 흔적은 아니다.
문명이 영원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모든 체계와 찬란함이 하나님의 임재 없이 세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임재 없이도 풍요는 올 수 있으며, 질서 없이도 정복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 중심에 살아 계신 분이 계시지 않을 때, 그 문명은 결국 자기 무게에 짓눌려 안으로부터 무너지게 된다.
역사는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임재를 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갈림길에서 철과 돌이 섞이지 않듯이 그저 그렇게 분리되는 과정의 연속이다.
이슬람은 율법을 품었으나, 그 율법은 살아 있는 하나님을 가두었고, 중국은 예와 조화를 추구했으나, 그 질서엔 인격적 소명이 없었으며, 인도는 영원의 침묵을 바라보았으나, 그 침묵은 생명의 부름을 외면했다.
이들 모두, 시간과 자원과 철학과 미학이 주어졌던 문명들. 그러나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선다는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그들은 기회를 놓쳤다.이제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고, 연결이 세계를 하나로 묶는 이 시기에, 거대한 덩어리로 존재하는 문명은 방향을 잃고 깨어난 한 사람들로 구성된 내면의 공동체만이 그 다음 문명을 세울 수 있는 문이 된다.
문명은 건축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거하시는 살아 있는 성전이다. 그 성전이 곧 한 사람의 심령이며, 그 심령 안에 다시 불이 붙을 때 비로소 역사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기록하고 또 질문을 해본다.문명은 어떤 힘에 의하여 존속하는가? 아니,더 깊은 질문은 이것이다.
그대는 그 임재 앞에 서 있는가?그리고 그대는 그분이 거하실 성전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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