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朱子語類家訓大全合
新天地主人朱子語類家訓大全合
1
주자어류(朱子語類)
<주자어류>는 송대 유학의 집대성자인 주희가 강학하면서 제자들의 질문에 답한 어록 모음집이다. 모두 140권이다. 주희가 죽은 후 이도전(李道傳)이 가정(嘉定) 8년(1215)에 <주자어록> 43권을 편집하여 지주(池州)에서 간행하였다. 그 안에는 요명덕(廖明德) 등 주희의 제자 33명이 기록한 것이 수집되어 있다. 이도전의 동생 이성전(李性傳)은 또 1238년에 <주자어속록> 46권을 편집하여 요주에서 간행하였다.
또 채항(蔡抗)은 1249년에 <주자어후록> 26권을 편집하여 요주에서 간행하였는데 주희의 제자 양방 등 23명이 기록한 것을 수록했다. 오견(吳堅)은 1266년에 또 이전의 3 판본에서 아직 수집하지 못한 기록을 수집하여 <주자어별록>을 편집하여 건안에서 간행하였다.
또 황사의(黃士毅)는 1219년에 “지록”(池錄)을 기초로 증보하여 <주자어류> 140권을 분류하고 편성하였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후속 자료를 보충하여 출판되다가 남송 이종(理宗) 때 여정덕(黎靖德)이 각족 판본의 어록과 어류를 종합하여, 이동(異同)을 고찰하고 중복된 것을 삭제하고 더욱 수정하여, 황사의가 <주자어류>를 편집할 때 사용한 주제별 분류에 따라 <주자어류대전(朱子語類大全)>을 편집하였다.
<주자어류>는 1170년부터 1199년까지 근 30년간 97명이 기록한 주희의 강학 어록을 기록한 것인데 그 중에는 4명의 무명씨도 있다. 대부분의 어록은 주희가 보지 못한 것이지만, 다만 보광(輔廣)이 기록한 내용의 일부분은 주희 본인이 검열했다고 한다. 그 가운데 64명의 기록은 주희가 60세 이후 때의 어록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주희 만년의 관점이 더욱 성숙된 것이어서 매우 가치가 있는 것이다.
송(宋) 나라 여정덕(黎靖德)이 편찬한 『주자어류대전(朱子語類大全)』의 여러 판본을 비교하여 오탈자를 교감(校勘)하였다. 『주자어류대전』의 판본으로는 지주본(池州本), 요주본(饒州本), 건안본(建安本), 휘주본(徽州本) 등이 있는데, 이를 당본(唐本)과 비교하여 검토한 것이다.
2
주자가훈(朱子家訓)
주자가훈은 주용순(用純:1617-1688)으로 자는 치일(致一) 자칭 백려(柏廬)로 명말(明末) 청초(淸初)의 곤산(昆山)인 치가격언(治家格言)이라고 하는데. 주자가례는 주희(朱熹 1130-1169) 가 저술하였다고 한다.
주자가훈은 버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개 525자(506자, 424자, 516자 등도 있음)로 이루어진, 분량이 그다지 많지 않은 교훈적인 글.
3
주자대전(朱子大全)
중국 송나라의 성리학자 주희의 문집. 주희가 여러 학자들과 주고받은 글을 주희가 죽은 뒤에 그의 문인들이 편찬하였다. 본편 100권, 별집 11권, 속집 10권.
중국 송나라 성리학자 회암(晦庵) 주희(朱熹)의 문집. 『회암선생주문공문집』, 『주자문집』, 『주자문집대전』이라고도 한다. 저자가 일생을 두고 저작한 모든 학설을 주로 하고 여러 학자들의 질의에 대해 회답한 편지들과 時. 記. 銘. 碑文. 墓誌 등 문예에 관한 저작들 함께 모은 방대한 저작이다.
주희(朱熹, 1130년 10월 18일 ~ 1200년 4월 23일)는 중국 남송의 유학자로, 주자(朱子), 주부자(朱夫子), 주문공(朱文公) 송태사휘국문공(宋太師徽國文公)이라는 존칭이나 봉호로도 불린다. 자(字)는 원회(元晦), 중회(仲晦)이다. 호는 회암(晦庵), 회옹(晦翁), 운곡노인(雲谷老人), 창주병수(滄洲病叟), 둔옹(遯翁)등 여러가지가 있다. 시호(諡號)는 문(文), 휘국공(徽國公)이다. 송나라 복건성(福建省) 우계(尤溪)에서 출생했으며 19세에 진사가 된 후 여러 관직을 지내면서 공자, 맹자 등의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주돈이, 정호, 정이 등의 유학 사상을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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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어류(朱子語類)
<주자어류>는 송대 유학의 집대성자인 주희가 강학하면서 제자들의 질문에 답한 어록 모음집이다. 모두 140권이다. 주희가 죽은 후 이도전(李道傳)이 가정(嘉定) 8년(1215)에 <주자어록> 43권을 편집하여 지주(池州)에서 간행하였다. 그 안에는 요명덕(廖明德) 등 주희의 제자 33명이 기록한 것이 수집되어 있다. 이도전의 동생 이성전(李性傳)은 또 1238년에 <주자어속록> 46권을 편집하여 요주에서 간행하였다.
또 채항(蔡抗)은 1249년에 <주자어후록> 26권을 편집하여 요주에서 간행하였는데 주희의 제자 양방 등 23명이 기록한 것을 수록했다. 오견(吳堅)은 1266년에 또 이전의 3 판본에서 아직 수집하지 못한 기록을 수집하여 <주자어별록>을 편집하여 건안에서 간행하였다.
또 황사의(黃士毅)는 1219년에 “지록”(池錄)을 기초로 증보하여 <주자어류> 140권을 분류하고 편성하였다. 그 후에도 계속해서 후속 자료를 보충하여 출판되다가 남송 이종(理宗) 때 여정덕(黎靖德)이 각족 판본의 어록과 어류를 종합하여, 이동(異同)을 고찰하고 중복된 것을 삭제하고 더욱 수정하여, 황사의가 <주자어류>를 편집할 때 사용한 주제별 분류에 따라 <주자어류대전(朱子語類大全)>을 편집하였다.
<주자어류>는 1170년부터 1199년까지 근 30년간 97명이 기록한 주희의 강학 어록을 기록한 것인데 그 중에는 4명의 무명씨도 있다. 대부분의 어록은 주희가 보지 못한 것이지만, 다만 보광(輔廣)이 기록한 내용의 일부분은 주희 본인이 검열했다고 한다. 그 가운데 64명의 기록은 주희가 60세 이후 때의 어록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주희 만년의 관점이 더욱 성숙된 것이어서 매우 가치가 있는 것이다.
송(宋) 나라 여정덕(黎靖德)이 편찬한 『주자어류대전(朱子語類大全)』의 여러 판본을 비교하여 오탈자를 교감(校勘)하였다. 『주자어류대전』의 판본으로는 지주본(池州本), 요주본(饒州本), 건안본(建安本), 휘주본(徽州本) 등이 있는데, 이를 당본(唐本)과 비교하여 검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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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가훈(朱子家訓)
주자가훈은 주용순(用純:1617-1688)으로 자는 치일(致一) 자칭 백려(柏廬)로 명말(明末) 청초(淸初)의 곤산(昆山)인 치가격언(治家格言)이라고 하는데. 주자가례는 주희(朱熹 1130-1169) 가 저술하였다고 한다.
주자가훈은 버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개 525자(506자, 424자, 516자 등도 있음)로 이루어진, 분량이 그다지 많지 않은 교훈적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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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대전(朱子大全)
중국 송나라의 성리학자 주희의 문집. 주희가 여러 학자들과 주고받은 글을 주희가 죽은 뒤에 그의 문인들이 편찬하였다. 본편 100권, 별집 11권, 속집 10권.
중국 송나라 성리학자 회암(晦庵) 주희(朱熹)의 문집. 『회암선생주문공문집』, 『주자문집』, 『주자문집대전』이라고도 한다. 저자가 일생을 두고 저작한 모든 학설을 주로 하고 여러 학자들의 질의에 대해 회답한 편지들과 時. 記. 銘. 碑文. 墓誌 등 문예에 관한 저작들 함께 모은 방대한 저작이다.
주희(朱熹, 1130년 10월 18일 ~ 1200년 4월 23일)는 중국 남송의 유학자로, 주자(朱子), 주부자(朱夫子), 주문공(朱文公) 송태사휘국문공(宋太師徽國文公)이라는 존칭이나 봉호로도 불린다. 자(字)는 원회(元晦), 중회(仲晦)이다. 호는 회암(晦庵), 회옹(晦翁), 운곡노인(雲谷老人), 창주병수(滄洲病叟), 둔옹(遯翁)등 여러가지가 있다. 시호(諡號)는 문(文), 휘국공(徽國公)이다. 송나라 복건성(福建省) 우계(尤溪)에서 출생했으며 19세에 진사가 된 후 여러 관직을 지내면서 공자, 맹자 등의 학문에 전념하였으며 주돈이, 정호, 정이 등의 유학 사상을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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