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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빛이 스민 동시집
유종우
나무숲 길을 걸어가고 있었어, 사슴 한 마리가.
겨울이었어, 그 사슴이 나무숲 사이의 길을 걷고 있었을 때는.
사슴은 나무숲을 거닐며 이따금 다른 사슴을 찾아보기도 했지만 그 숲에선 자신과 닮은 그 어떤 누구도 찾을 수는 없었어.

사슴은 문득 자신을 닮은 다른 사슴을 그 숲에서 보았던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그의 머릿속에, 흔들리듯 아련히 가물거리는 희읍스레한 겨울빛 형상으로만 환영같이 머물러 있을 뿐, 그의 눈앞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거나, 그에게 다가와 그를 감싸듯 웃음 짓거나, 따스하고 보드라운 그 손을 그에게 내밀지는 못했던 거야.
사슴은, 나무 사이를 거닐며 나무숲의 희푸른 그 겨울 빛깔을 두 눈에 가득히 안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그곳에 서 있는 나무들과 무척 닮아 있다고 생각했어.

사슴은 겨울 숲 사이로 흘러내리는, 나무와 잎들의 하얀 숨결들 위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았어. 겨울의 향기가 어린 나무숲의 그 숨결 속에는, 늘 변하지 않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생기 어린 나무들처럼 매일같이 반짝이는 그 나무숲과도 같은 자신의 눈빛이 비쳐 왔던 거야. 그리고 그 모습 속에서 사슴은 사무치게 그립던 지난날의 자신과 마주할 수 있었던 거야.
사슴은 어느새 겨울 숲의 나무와도 같은 그 겨울빛으로 다시 한번 물들며, 그 숲의 나무와 같은 모습으로 그들과 함께 서 있게 되었지.

사슴의 두 눈은 어느 사이엔가 겨울빛보다 더 밝고 환한 기쁨으로 끝없이 반짝이기 시작하고, 사슴 주변으로 흐르던 겨울의 빛깔과도 같은 그 따스하리만치 애틋한 향기는 어느덧, 숲에 홀로 선 사슴을 나긋이 어루만지며 스쳐 지나가, 겨울이 내린 나무의 숲과, 소곤대듯 나부끼는 그곳의 나뭇잎들에게 희디흰 눈빛 숨결을 불어 넣으며, 그들이 머무는 그 숲 위에 아득하리만치 부드럽고도 은은하게 소리 없이 살며시 내려앉는다.

출판사

키메이커

출간일

전자책 : 2022-06-17

파일 형식

ePub(24.68 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