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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당양조사전 91회 - 100회 10
저자 나관중 번역자 홍성민
수당양조사전은 수당야사 수당양조지전이라고도 불리며 삼국지연의등을 쓴 명나라 나관중의 수나라 당나라 야사를 기록한 소설 예시문 第九十一回 高麗王輿?出降 제구십일회 고려왕여친출항 수당양조사전 91회 고구려왕은 수레에 관을 싣고 항복하러 나왔다. 주의 이 회의 내용은 당나라 태종이 양만춘에게 안시성에서 패배한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한 글이며 동북공정등 중화주의사상이 들어가 있을 수 있으므로 양해를 바라며 역사를 소설로써만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當日帝見仁貴殺敗遼兵 大喜 遂重賞之。 당일제견인귀살패요병 대희수중상지 당일에 태종은 설인귀가 요나라 병사를 죽여 패배시킴을 보고 매우 기뻐서 곧 중상을 내렸다. 帝曰:“朕諸將皆老 思得新進驍勇者爲之 無如卿者。朕不喜得遼東 喜得卿也。” 제왈 짐제장개노 사득신진효용자위지 무여경자 짐불희득요동 희득경야 태종이 말했다. “짐은 여러 장수가 모두 늙어서 새롭게 효용의 자가 하리라 생각했지만 경만한 살마이 없었소. 짐은 요동을 얻은 것이 기쁜 것이 아니라 경을 얻음이 기쁘오.” 原來蓋蘇文知救兵敗亡 諸營已失 半夜棄城奔逃高麗去訖。 원래개소문지구병패망 제영이실 반야기성분도고려거흘 원래 연개소문은 구원병이 패망하며 여러 영채를 이미 잃음을 알고 야반에 성을 버리고 고구려로 도주하였다. 唐兵遂得了白岩城諸寨。 당병수득료백암성제채 당나라 병사는 백암성의 여러 영채를 얻었다. 蘇文來見高麗王藏 言救兵戰亡 失了白岩城。 소문래견고려왕장 언구병전망 실료백암성 연개소문은 고구려왕 보장을 알현하고 구원병이 전투에서 죽고 백암성을 잃었다고 했다. 王藏大怒 欲斬蘇文 蘇文曰:“臣再乞一軍 前去?戰 必斬唐將;如不勝 願斬頭與主公階下責令。” 왕장대노 욕참소문 소문왈 신재걸일군 전거닉전 필참당장 여불승 원참두여주공폐하책령 ?令 [z?l?ng] 1) 책임을 과하다 2) 책임을 지도록 하다 3) 책임지고 하도록 명령하다 보장왕이 매우 분노하여 연개소문을 베려고 하니 개소문이 말했다. “신은 다시 한 군사를 빌려 앞서 가서 싸움을 돋우며 반드시 당나라 장수를 베겠습니다. 만약 이기지 못하면 벤 머리를 주공의 폐하에 바쳐 책임을 지겠습니다.” 蘇文上馬 引二萬軍離高麗 復求拒敵。 소문상마 인이만군리고려 부구거적 연개소문이 말에 올라 2만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를 떠나 다시 적을 막길 구했다. 却說薛仁貴勸世績進兵 績言不可 仁貴曰:“某乞一軍 前去哨路。” 각설설인귀권세적진병 적언불가 인귀왈 모걸일군 전거초로 각설하고 설인귀는 이세적에게 병사진격을 권하나 이세적이 불가하다고 하니 인귀가 말했다. “저에게 한 병사를 주시면 앞에 가서 길을 염탐하겠습니다.” 世績卽令仁貴引五千騎望安市上來 正迎蘇文 兩軍擺開 蘇文遣獨孤奇出馬 與仁貴交鋒。 세적즉령인귀인오천기망안시상래 정영소문 양군파개 소문견독고기출마 여인교봉 이세적은 설인귀를 시켜 5천명의 기마를 이끌고 안시성으로 가서 바로 연개소문을 만나서 양군이 진을 배열하니 연개소문은 독고기를 보내 출마하게 하며 설인귀와 교전하게 했다. 戰不兩合 一戟刺於馬下 蘇文自輪刀出與仁貴鬪三十合 又敗而回。 전불양합 일극자어마하 소문자윤도출여인귀투삼십합 우패이귀 싸움이 2합이 안되어 한 창으로 말아래로 찔려지니 연개소문이 스스로 칼을 휘두르며 설인귀와 30합을 싸우다 또 패배하고 돌아갔다. 帝知仁貴已敗蘇文 卽時催軍 直抵安市下寨。 제지인귀이패소문 즉시최군 직저안시하채 태종은 설인귀가 이미 연개소문을 패퇴시킴을 알고 즉시 군사를 재촉하여 곧장 안시성에 나아가 영채를 세웠다. 蘇文見勢危 和衆將放火 盡燒倉庫、房屋、城郭 是夜三更 引衆開南門而走 帝令衆將追之。 소문견세위 화중장방화 진소창고 방옥 성곽 시야삼경 인중개남문이주 제령중장추지 연개소문은 기세가 위태로움을 보고 여러 장수오 방화를 하여 창고 집 성곽을 다 불사르니 이 밤 3경에 여럿을 이끌고 남문을 열고 달아나니 태종이 여럿을 이끌고 추격했다. 却說蘇文正走之際 忽然一彪軍截斷去路 爲首唐將李思摩 與蘇文交鋒 戰不數合 秦懷玉軍又到。 각설소문정주지제 홀연일표군절단거로 위수당장이사마 여소문교봉 전불수합 진회옥군우도 각설하고 연개소문이 달아나려는 때에 갑자기 한 군사가 갈 길을 끊으니 첫째 장수는 이사마로 연개소문과 교전하여 싸움이 몇합안되어 진회옥 군사가 또 도달했다. 蘇文勢孤 不能?抵 奪路歸高麗國來。 소문세고 불능당저 탈로귀고려국래 연개소문의 기세가 고립되어 막지 못하고 길을 빼앗아 고구려나라로 돌아갔다. 時遼兵皆被唐兵殺盡 只有一百餘騎後隨。 시요병개피당병살진 지유일백여기후수 이 때 요동병사는 모두 당나라 병사에게 다 죽고 단지 100여기마만 뒤를 따랐다. 又殺一陣 只剩得十數騎 來到高麗城下 叫開門時; 우살일진 지잉득십수기 래도고려성하 규개문시 또 한바탕 죽고 단지 십수기병만 남아 고려성 아래에 도달하여 문을 열라고 소리쳤다. 唐兵至近 城上高麗王藏與衆臣見蘇文到 大罵曰:“?國逆賊 皆汝誇强 强惹大唐人馬御駕親征 掃奪遼東社稷。今又損兵 不能退敵 要汝何用?” 당병지근 성상고려왕장여중신견소문도 대매왈 찬국역적 개여과강 강야대당인마어가친정 소탈요동사직 금우손병 불능퇴적 요여하용 당나라 병사가 근처에 이르니 성위에 고구려왕 보장왕과 여러 신하는 연개소문이 도달함을 보고 크게 욕했다. “나라를 찬탈한 역적 모두 네가 과장함이니 당나라 군인과 말이 친히 정벌을 오게 하여 요동의 사직을 빼앗기게 했다. 지금 또 병사를 손상시켜 적을 물리치지 못하니 너를 어디에 쓰겠는가?” 喝令軍士亂箭射下 蘇文回馬持刀 待取路望扶桑國而走。 갈령군사난전사하 소문회마지도 대취로망부상국이주 군사를 일갈해 어지러이 화살을 쏘게 하니 연개소문은 말을 돌려 칼을 지니고 길을 취해 부상국을 바라보고 달아났다. 行不到一舍之地 樹林之中 一軍閃出 爲首大將薛仁貴 ?住去路。 행부도일사지지 수림지중 일군섬출 위수대장설인귀 난주거로 1사의 땅을 가지 않아서 숲안에서 한 군사가 갑자기 나오니 선두 대장은 설인귀로 갈 길을 막고 있었다. 蘇文人困馬乏 不能?抵 回頭便走。 소문인곤마핍 불능당저 회두변주 연개소문이 군인과 말이 피곤하여 막지 못하고 머리를 돌려 곧 달아났다. 忽然見一將從山坡下轉出 乃吳黑達 曰:“蘇文到此 何爲不降?” 홀연견일장종산파하전출 내오흑달 왈 소문도차 하위불항 갑자기 한 장수가 산비탈에서부터 돌아 나오니 오흑달로 그가 말했다. “연개소문은 여기에 도달하여 어찌 항복하지 않는가?” 蘇文尋思後有唐兵到此 別無去路 只得下馬請降 引來見帝。 소문심사후유당병도차 별무거로 지득하마청항 인래견제 연개소문은 심사숙고 이후에 당나라 병사가 이에 도달하니 따로 달아날 길이 없어서 부득불 말에서 내려 항복을 청하며 황제를 보길 청했다. 帝怒:“此賊?罵朕躬 爲臣不忠 後去必反 留之無益。” 제노 차적훼매짐궁 위신불충 후거필반 유지무익 태종이 분노했다. “이 도적은 짐을 명예훼손하고 욕하여 신하로 불충하여 뒤에 가면 반드시 반란할 것이니 남겨두어도 무익하다.” 喝令五馬殉之 分其屍首 催兵進攻其城。 갈령오마순지 분기시수 최병진공기성 5말을 시켜 사지를 찢어 순장하게 하며 시체와 몸을 나눠 병사를 재촉해 성을 공격하게 했다. 王藏知蘇文被誅 城上?起降旗。 왕장지소문피주 성상수기항기 보장왕은 연개소문이 피살당함을 보고 성위에서 항복기를 달았다. 次日大開城門 君臣面縛 左右同扶輿? 出北門十里來降。 차일대개성문 군신면박 좌우동부여츤 출북문십리래항 面縛輿?(널 츤 ?-총20획 ch?n q?n h?n) 스스로 손을 뒤로 묶고 관을 짊어지고 사과(謝過)하는 모양 다음날 크게 성문을 열고 군주와 신하가 포박당해 좌우에서 모두 부축하고 관을 짊어지고 북문 10리를 나서 항복하러 왔다. 唐大軍已到 見王藏君臣伏道 國人香花燈燭 迎門而接 車駕入城 帝詔安民 設宴作賀。 당대군이도 견왕장군신복도 국인향화등촉 영문이접 거가입성 제조안민 설연작하 당나라 대군이 이미 도달하여 보장왕의 군주와 신하가 길에 엎드리며 나라 사람이 향꽃으로 불을 밝히며 문을 열어 맞이하며 어가가 성에 들어오게 하며 태종은 조서로 백성을 편안하게 하게 하며 잔치를 열어 축하하였다. 仍令王藏爲高麗之主 奉唐正朔 年年入貢 歲歲來朝 不敢侵犯。 잉령왕장위고려지주 봉당정삭 년년입공 세세래조 불감침범 보장왕을 시켜 고구려 군주로 삼고 당나라의 정삭을 받들어 쓰게 하며 해마다 공물을 들이며 해마다 조회하게 오게 하며 감히 침범하지 않게 했다. 帝令薛萬徹等招諭?勒諸部 其酋長皆喜 頓首請入朝歸服。 제령설만철등조유칙륵제부 기추장개희 돈숯청입조귀복 태종은 설만철등을 시켜 칙령을 여러 부에 보내 회유하여 추장이 모두 기뻐하며 머리를 조아리며 조공을 들어와 귀순해 복종한다고 했다. 後人有詩曰:太宗當日自親征 率領??百萬兵。 후인유시왈 태종당일자친정 솔령비휴백만병 후대 사람이 시로 다음과 같이 썼다. 태종은 당일에 친히 정벌을 나서서 비휴와 같은 병사 100만명을 거느렸다. 仁貴功成皆仰德 懋功誰敢與齊名。 인귀공성개앙덕 무공수감여제명 설인귀의 공로가 이루어 모두 덕을 숭상하며 무공[이세적]은 누가 감히 이름을 나란히 하겠는가? 遼煙影裏旌旗現 安市城前金鼓鳴。 요연영리정기현 안시성전금고명 麗國城中鼓樂鳴이라고 중국인들이 왜곡함 요동의 전쟁의 연기에 정기가 드러나는데 안시성앞에서 금과 북이 열린다. 自是遐方恨憶胸 令人千古說一失. 자시하방한억흉 령인천고설일실 “自是遐方驚破膽 令人千古說英聲。”이라고 중국인들이 왜곡함 이로부터 먼지방에서 한이 가슴에 추억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천년에 한번 실수라고 한다. 帝將高麗一應事務 盡委王藏。 제장고려일응사무 진위왕장 태종은 고구려의 한 사무를 모두 보장왕에게 맡겼다. 長孫無忌曰:“今陛下親提人馬 跨海而來 收復高麗 旣以歸順 何不設官置吏 一同王藏守之。” 장손무기왈 금폐하친제인마 과해이래 수복고려 기위귀순 하불설관치리 일동왕장수지 장손무기가 말하길 “지금 폐하께서 친히 군인과 말을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서 왔으며 고려를 수복하니 이미 귀순하였는데 어찌 관리를 두지 않고 동일하게 보장왕에게 지키게 하십니까?” 帝以問世績 世績曰:“留外則當留兵 留兵則無所食。今留兵傷折甚多 父兄死喪 留外人而不留兵 必成禍患 不可以留人也。且高麗累有廢立之罪 自有嫌疑 留外人終不相信 今不留人 不留兵 不運糧 自然安矣。” 태종은 이세적에게 물으니 이세적이 말했다. “외부에 머무르려면 병사를 남겨야 하며 병사가 머물려면 음식이 없습니다. 지금 병사를 머물러도 손상됨이 많아서 부형들이 죽음에 장례를 하며 외인을 남겨두면 병사를 남겨두지 않으니 반드시 재앙의 근심이 이루나 사람을 남겨둘수 없습니다. 고구려는 자주 폐위하는 죄가 있고 스스로 혐의가 있으니 외인을 남겨서 종내 서로 믿지 못하니 지금 사람을 남기지 않고 병사를 머물게 하지 않고 식량을 운반하지도 않으면 자연히 편안할 것입니다.” 帝曰:“卿言甚當。” 제왈 경언심당 태종이 말했다. “경의 말이 매우 타당하다.” 遼人皆用金珠寶貨耕牛戰馬拜送 帝以資軍用 後歲進貢 終身不反。 요인개용금주보화경우전마배송 제이자군용 후세진공 종신불반 요동 사람은 모두 금 구슬 보화 밭가는 소 전마를 써서 보내오니 태종은 군용으로 바탕을 삼게 하니 뒤 해마다 공물진상을 종신토록 되돌리지 않았다. 高麗已定 帝詔令班師 王藏率大小官員 及遼兵拜送。 고려이정 제조령반사 왕장솔대소관원 급요병배송 고구려가 이미 정벌되어 태종이 조서로 군사를 돌리게 하미 보장왕은 대소관료를 이끌고 요동병사에 이르러서 절하며 전송했다. 車駕離了高麗 歸至營州 詔令戰死士卒骸骨歸葬於聊城 仍令所在官司具太牢 帝自作文以祭之。 거가리료고려 귀지영주 조령전사사졸해골귀장어요성 잉령소재관사구태뢰 제자작문이제지 어가가 고구려를 떠나 영주에 도달하니 조서로 전사자 군졸의 유해를 료성에 돌아가 장례하게 하니 소재의 관리들은 모두 태뢰 제사를 갖추고 태종 스스로 제문을 지었다. 及祭 放聲大哭 情動三軍 知者莫不垂淚。 급제 방성대곡 정동삼군 지자막불수루 제사를 하니 크게 목놓아 울고 감정이 3군을 동요하니 아는 사람은 눈물을 떨구지 않음이 없었다. 却說前軍哨馬 報稱太子率文武百官前來迎接聖駕 今已至近。 각설전군초마 보칭태자솔문무백관전래영접성가 금이지근 각설하고 전군의 보초기마가 태자가 문무백관을 이끌고 앞에서 어가를 맞이하러 와 거의 왔다고 帝聽聞 乃從飛騎三千人先馳入臨?關 路遇太子 父子二人相見 不勝喜悅。 제청문 내종비기삼천인선치입임유관 로우태자 부자이인상견 불승희열 山海關(又名?關或?關),本漢陽樂縣地,隋開皇三年(西元五八三年)城?關,又名臨?關 태종이 말을 듣고 곧 빨리 기병 3천명을 먼저 임유관에 달려가게 하여 길에서 태자를 만나니 부자 두 사람이 서로 보고 기쁨을 이기지 못했다. 太子遂進一套新衣與帝換上。 태자수진일투신의여제환상 태자는 곧 한 벌 새로운 옷을 진상해 태종이 갈아 입게 했다. 原來帝初離長安 發定州之時 親用手指御褐袍謂太子曰:“待征東回日 見汝乃換此袍耳。” 원래제초리장안 발정주지시 친용수지어갈포위태자왈 대정동회일 견여내환차포이 원래 태종이 초기에 장안을 떠나 정주를 출발할 때 친히 손가락으로 임금의 갈포를 써서 태자에게 말했다. “동쪽을 정벌하고 돌아올때를 기다려 너를 보니 이 옷으로 갈아 입겠다.” 故帝在遼左 雖盛暑流汗 亦不肯換。 고제재요좌 수성서유한 역불긍환 그래서 태종이 요동에 있을 때 비록 매우 더운데 땀이 흘러도 또한 갈아입으려고 하지 않았다. 至是 太子進上新衣 帝乃換之。 지시 태자진상신의 제내환지 이에 이르러서 태자는 새로운 옷을 진상하니 태종이 갈아입었다. 當日諸軍擄得高麗之民。 당일제군로득고려지민 당일에 여러 군사는 포로로 고구려 백성을 얻었다. 一萬四千口 安集於幽州 將以賞軍。 일만사천구 안집어유주 장이상군 14000명으로 유주에 모아서 군사에게 상으로 주었다. 帝?其父子夫婦離散 乃命有司平其直 悉以錢布贖之爲民 於是歡呼之聲 三日不息 果然鞭敲金?響 人唱凱歌聲。 제민기부자부부이산 내명유사평기직 실이전포속지위민 어시환호지성 삼일불식 과연편고금등향 인창개가성 平直 [p?ngzh?] 1) 똑바르다 2) 곧이곧대로 3) 꾸밈없이 바른대로 ?(걸상 등 ?-총14획 d?ng) 태종은 부자 부부로 헤아진 사람에게 관리를 시켜 똑바르게 하게 하며 모두 돈 베로 속죄하여 백성으로 삼으니 환호성이 3일동안 꺼지지 않으니 과연 채찍과 북 금걸상을 울리게 하니 사람마다 개선가를 불렀다. 駕入長安 文武遠接一百里之外。 가입장안 문무원접일백리지외 어가가 장안에 들어와서 문무대신이 멀리서 100리밖에서 멀리 영접했다. 帝歸朝 設太平筵宴 賞勞三軍 出征將士有功者 各個加封。 제귀조 설태평연연 상로삼군 출정장사유공자 각개가봉 태종이 조정에 돌아와 태평연을 열고 3군을 상으로 위로하며 출정한 장사에 공로가 있는 사람은 각자 더해 봉해주었다. 當日君臣正?酒間 忽見正西方一顆星 其大如斗 流光射人。 당일군신정음주간 홀견정서방일과성 기대여두 유광사인 당일에 군주와 신하가 음주하는 사이에 갑자기 정서쪽에서 한 알 별이 보이는데 크기가 한 말斗만하며 광채가 사람을 쏘았다. 帝大驚曰:“哀哉痛哉!其爲禍也大矣。” 제대경왈 애재통재 기위화야대의 태종이 매우 놀라서 말했다. “애통하구나! 재앙이 클 것이다.” 衆官慌問其故 帝曰:“此太白星也。吾前者武德九年 太白經天 使吾兄弟相競 今又晝見 朕知其爲凶兆 不知有甚驚報。” 중관황문기고 제왈 차태백성야 오전자무덕구년 태백경천 사오형제상경 금우주견 짐지기위흉조 부지유심경보 여러 관리가 당황하여 그 이유를 묻자 태종이 말했다. “이는 태백성이다. 내가 전 무덕 9년에 태백이 하늘을 경유하여 우리 형제를 서로 다투게 하니 지금 또 낮에 나타나니 짐은 그것이 흉한 징조인지 알겠지만 어떤 경보인지는 모르겠다.” 急令太史令李淳風卜之 淳風曰:“臣掌司天 但有災福 不敢不奏。此卜應在女主昌民間 乃不利之兆。更臣昔得異人傳授秘記 其中所載已往未來 陰陽禍福 無不應驗。有云大唐三世之後 女主武王 代有天下。” 급령태사령이순풍복지 순풍왈 신장사천 단유재복 불감부주 차복응재여주창민간 내불리지조 갱신석득이인전수비기 기중소재이왕미래 음양화복 무불응험 유운대당삼세지후 여주무왕 대유천하 급히 태사령 이순풍을 불러 점치게 하니 순풍이 말했다. “신은 하늘 보는 것을 관장하며 단지 재앙과 복이 있으니 상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점 반응은 여자 주인이 민간에 창성하니 불리할 징조입니다. 다시 신은 예전이 기인이 전수한 비기에도 기재가 미래가 이미 있고 음양화복에 징험이 반응하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거기서 말하길 당나라 3세대 뒤에 여자 주인 무왕이 천하를 대신 소유한다고 합니다.” 帝曰:“陰陽果實 汝深明天文之道 預知吉凶先後遠近 ?與朕明言之。” 제왈 음양과실 여심명천문지도 예지길흉선후원근 합여짐명언지 태종이 말했다. “음양이 과연 실제하면 너는 깊이 천문의 도리에 깊을 것이며 미리 길흉의 선후와 원근을 아니 어찌 짐에게 밝혀 말할 수 없는가?” 淳風曰:“臣仰觀天象 俯察曆數 其人已在陛下宮中爲宮人 不出三十年 當王天下 殺唐子孫殆盡。” 순풍왈 신앙관천상 부찰역수 기인이재폐하궁중위궁인 불출삼십년 당왕천하 살당자손태진 俯察 아랫사람의 형편(形便)을 두루 굽어 살핌 이순풍이 말했다. “신이 하늘 천문을 우러러 보며 역수를 보니 사람이 이미 폐하의 궁중에서 궁인이 되니 30년을 나가게 하지 않고 천하에 왕이 되어 당나라 자손을 거의 다 죽일 것입니다.” 帝曰:“疑似者皆殺之 如何?” 제왈 의사자개살지 여하 태종이 말했다. “의심되는 사람을 모두 다 죽임이 어떠한가?” 淳風曰:“天之所命 人不能違也。王者不死 徒多殺無辜;且自今已往 若三十年 其人已老 庶幾頗有慈心 爲禍或淺。今借使得而殺之 天或生壯者 肆其怨毒 陛下子孫無遺類矣。” 순풍왈 천지소명 인불능위야 왕자불사 도다살무고 차자금이오아 약삼십년 기인이로 서기파유자심 위화혹천 금차사득이살지 천혹생장자 사기원독 폐하자손무유류의 이순풍이 말했다. “하늘의 명령을 사람이 어길 수 없습니다. 왕이 되어 죽지 않으면 한갓 무고한 사람을 많이 죽이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이미 30년이면 사람이 이미 늙어서 거의 자애로운 마음이 있고 재앙은 혹 얕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죽이면 하늘이 혹 장성한 사람을 낳아도 원망한 독으로 마음대로 하면 폐하의 자손은 남은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帝曰:“朕有一計 不費半毫之力 使暴?之人 不能爲害。” 제왈 짐유일계 불비반호지력 사포한지인 불능위해 태종이 말했다. “짐에게 한 계책이 있으니 반터럭만큼의 힘도 낭비하지 않고 사나운 사람이 피해를 주지 않게 하겠네.” 淳風請問其計 帝曰:“臨期便見。” 순풍청문기계 제왈 임기변현 이순풍이 그 계책을 묻자 태종이 말했다. “시기에 임하면 곧 나타나리라.” 次日 設宴宮中 大會衆臣。 차일 설연궁중 대회중신 다음날에 궁중에 잔치를 열어 크게 여러 신하들을 모았다. 酒行數巡 帝曰:“近者征遼 皆賴汝衆之力 雖行賞賜 竊知其中多有官品名字相同者 因被濫? 未得盡善。今日斯宴 專爲封賞而設 汝等衆臣各言小名 使朕知之 ?行賞賜。” 주행수순 제왈 근자정요 개뢰여중지력 수행상사 절지기중다유관품명자상동자 인피람도 미득진선 금일사연 전위봉상이설 여등중신각언소명 사짐지지 령행상사 술이 몇순배 돌자 태종이 말했다. “근래 요동정벌로 모두 여러분의 힘에 의뢰하여 비록 상을 내리려고 하나 그 중에 많은 관품의 이름이 같은 사람이 있어서 남용되어 다 좋지 못할까 두렵다. 오늘 잔치에서 오로지 상을 봉하기 위하여 설치하니 너희들 여러 신하들은 자기 이름을 말하여 짐이 알게 하여 따로 상을 내리겠다.” 時有左武衛將軍李君羨不知是計 自言臣名“五娘” 而官稱、封邑皆有“武”字。 시유좌무위장군이군선부지시계 자언신명오랑 이관칭 봉읍개유무자 좌무위장군인 이군선 이 계책을 모르며 스스로 신의 이름이 오랑인데 관직 호칭으로 봉읍에 모두 ‘무’란 글자로 말했다. 帝大笑曰:“何物女子 乃爾勇健邪?” 제대소왈 하물여자 내이용건야 태종이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어찌 여자가 너처럼 용감하고 건장하다는 말인가?” 遂以事誅之。 수이사주지 곧 이 일로 죽게 했다. 蓋帝疑秘記所言之故也。 개제의비기소언지고야 태종은 비기에서 말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史官有詩云:秘記傳聞女主昌 太宗宵?謹堤防。 사관유시운 비기전문여주창 태종초간근제방 宵?(해 질 간 ?-총7획 g?n) 宵衣?食 임금이 정사(政事)에 부지런함을 뜻함. 미명(未明)에 일어나 정복(正服)을 입고 해가 진 뒤에 저녁밥을 든다는 뜻에서 온 말 사관이 시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기에 전해오길 여자주인이 창성하니 태종은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여 삼가 막으려고 했다. 不知晨牝生宮掖 空殺將軍李五娘。 부지신빈생궁액 공살장군이오랑 晨牝 암탉이 아침에 울어 시간을 알린다는 뜻으로 여자가 정치에 관여함을 비유하여 일컫는 말 새벽암닭이 궁중에서 생김을 모르니 한갓 장군 이오랑을 죽이도다. 原來帝有宮人武媚娘 方年十四。 원래제유궁인무미랑 방년십사 원래 태종은 궁인 무미랑이 있는데 나이가 14세였다. 貞觀十一年 帝已納爲才人 不知應在此人身上 只疑秘記云女主武王 代有天下之語 見聞李五娘名字 恐爲後患 特令殺之。 정관십일년 제이납위재인 부지응재차인신상 지의비기운여주무왕 대유천하지어 견문이오랑명자 공위후환 특령살지 정관11년에 태종은 이미 재인으로 받아들이고 이 여자 신상을 모르고 단지 비기에서 여자 주인이 무왕이 되어 대신 천하를 소유한다는 말로 이오랑의 이름을 듣고 후환이 두려워 특별히 죽게 했다. 却說武媚娘名 ?州文水人也。 각설무미랑명 병주문수인야 文水 지금의 산시성山西省 문수현文水縣 각설하고 무미랑은 이름이며 병주 문수현 사람이다. 都督士?之女。 도독사확지녀 도독인 무사확의 딸이다. 其母夢妖狐據腹而生 ?色?美 故小字稱爲媚娘。 기모몽요호거복이생 안색절미 고소자칭위미랑 어미가 꿈에 요사스런 여우를 꿈꾸고 배속에 생기니 안색이 매우 아름다워 어린 이름이 아름다운 아가씨인 미랑이었다.

출간일

전자책 : 2013-09-06

파일 형식

ePub(1.24 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