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합잡지 사상계 총목차 및 인명 색인
김려실 외 지음<사상계>는 1950, 60년대의 대표적인 월간 종합잡지이다. 이 잡지의 전신은 문교부 산하 국민사상연구원의 기관지였던 <사상>(思想)으로, 1952년 여름에 임시수도 부산에서 처음 발행되었다. 이후 <사상>의 편집자였던 장준하가 인수하여 1953년 4월호부터 <사상계>(思想界)라는 제호로 발행했다.
전쟁과 빈곤으로 인해 지적인 읽을거리가 부족했던 상황에서 본격적인 종합교양지였던 <사상계>는 식자층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창간호의 편집후기가 “동서고금의 사상을 밝히고 바른 세계관 인생관을 확립하여 보려는 기도(企圖)”를 밝혔듯 이 잡지는 서구의 사상과 학문을 거의 동시적으로 번역하고 논평함으로써 지적 공론장을 형성하는 한편, 검열에 굴하지 않는 정치 평론을 통해 지성인들의 사상적 거점이 되었다.
사세가 융성했던 시기에는 동인문학상, 신인문학상, 사상계논문상, 사상계번역상을 제정하여 문예운동도 전개했고 필자들의 전국순회강연을 통해 독자들의 호응에 보답했다. 그러나 계속된 정권의 탄압으로 인해 1960년대 후반부터 발행부수가 급감했고 발행인 장준하가 정계에 진출하며 경영난은 가속화되었다. 1968년에 부완혁이 발행권을 넘겨받아 부활을 모색했으나 1970년 5월호에 김지하의 「오적」(五賊)을 게재한 것을 당국이 문제 삼아 통권 제205호로 정간되었다.
전쟁과 빈곤으로 인해 지적인 읽을거리가 부족했던 상황에서 본격적인 종합교양지였던 <사상계>는 식자층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창간호의 편집후기가 “동서고금의 사상을 밝히고 바른 세계관 인생관을 확립하여 보려는 기도(企圖)”를 밝혔듯 이 잡지는 서구의 사상과 학문을 거의 동시적으로 번역하고 논평함으로써 지적 공론장을 형성하는 한편, 검열에 굴하지 않는 정치 평론을 통해 지성인들의 사상적 거점이 되었다.
사세가 융성했던 시기에는 동인문학상, 신인문학상, 사상계논문상, 사상계번역상을 제정하여 문예운동도 전개했고 필자들의 전국순회강연을 통해 독자들의 호응에 보답했다. 그러나 계속된 정권의 탄압으로 인해 1960년대 후반부터 발행부수가 급감했고 발행인 장준하가 정계에 진출하며 경영난은 가속화되었다. 1968년에 부완혁이 발행권을 넘겨받아 부활을 모색했으나 1970년 5월호에 김지하의 「오적」(五賊)을 게재한 것을 당국이 문제 삼아 통권 제205호로 정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