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북] 강우규 커버](https://image.aladin.co.kr/product/33279/20/cover500/e652532939_1.jpg)
[오디오북] 강우규노구를 민족제단에 바친 의열투쟁가
정운현 지음항일투쟁은 조직적.집단적인 형태와 함께, 개인 차원의 ‘특공작전’ 방식인 의열투쟁이 하나의 독립운동방략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의열투쟁은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에서 약소(弱小)세력들의 대표적인 투쟁방략 가운데 하나였다.
강우규는 65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3.1만세운동 여파로 하세가와 총독이 물러나고 후임으로 해군대장 출신의 사이토가 부임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폭살키로 결심했다. 그리고 1919년 9월 2일 사이토가 부산을 거쳐 남대문역(현 서울역)에 도착하자 그를 향해 폭탄을 던져 30여 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3.1만세운동 과정에서 일본 군경에 저항한 무수한 항일투사들이 있었지만 식민통치의 최고책임자인 조선총독 제거를 목표로 거사를 준비한 사람은 드물었다. 강 의사는 의거 처음부터 목표를 조선총독으로 잡고 주도면밀한 준비를 통해 거사를 결행했다. 비록 총독을 척살하지는 못했지만 강 의사의 의거가 항일투쟁사와 동양사에 끼친 영향을 감안하면 소기의 성과는 충분히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강우규는 65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3.1만세운동 여파로 하세가와 총독이 물러나고 후임으로 해군대장 출신의 사이토가 부임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폭살키로 결심했다. 그리고 1919년 9월 2일 사이토가 부산을 거쳐 남대문역(현 서울역)에 도착하자 그를 향해 폭탄을 던져 30여 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3.1만세운동 과정에서 일본 군경에 저항한 무수한 항일투사들이 있었지만 식민통치의 최고책임자인 조선총독 제거를 목표로 거사를 준비한 사람은 드물었다. 강 의사는 의거 처음부터 목표를 조선총독으로 잡고 주도면밀한 준비를 통해 거사를 결행했다. 비록 총독을 척살하지는 못했지만 강 의사의 의거가 항일투쟁사와 동양사에 끼친 영향을 감안하면 소기의 성과는 충분히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