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성룡의 징비치욕의 역사는 여기서 끝내야 한다
박기현 지음임진년(1592년) 4월 13일(음력), 전국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명가도'를 내세우며 20만 정예 병력을 파병하여 조선을 파죽지세로 유린했다. 부산성과 동래성에서 잠깐 교전하고, 충주 탄금대에서 신립 장군이 막아섰지만 불과 반나절을 지체했을 뿐 왜군이 한양까지 점령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20일도 안 되었다. 맨몸으로 걸어도 힘든 천 리 길을 무장한 병력이 이런 속도로 이동했다는 것은 불가사의하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의 임금 선조는 평양성 어전회의에서 백성과 사직을 버리고 명나라로 도망갈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신료가 선조의 말에 동조하던 그때 단 한 사람, 류성룡만이 막아선다.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나면 이 땅은 우리 땅이 아닙니다.'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했던 선조와 달리 민심 이반까지 염려해 이 같은 고언을 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7년, 조선의 국토와 백성이 처절하게 유린당하는 현장에는 영의정이자 도체찰사이며 훈련도감 제조이기도 했던 류성룡이 있었다. 전시 행정 수반으로, 군 최고사령관으로, 국방부 장관으로 전쟁과 행정 그리고 외교까지 1인 3역을 해낸 것이다. <류성룡의 징비>는 임진왜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조명한 책으로 역사적 사실과 함께 류성룡의 활약상, 즉 초유의 국난을 온몸으로 치러야 했던 치열한 세 가지 전쟁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의 임금 선조는 평양성 어전회의에서 백성과 사직을 버리고 명나라로 도망갈 것이라고 말한다. 모든 신료가 선조의 말에 동조하던 그때 단 한 사람, 류성룡만이 막아선다.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나면 이 땅은 우리 땅이 아닙니다.'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했던 선조와 달리 민심 이반까지 염려해 이 같은 고언을 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7년, 조선의 국토와 백성이 처절하게 유린당하는 현장에는 영의정이자 도체찰사이며 훈련도감 제조이기도 했던 류성룡이 있었다. 전시 행정 수반으로, 군 최고사령관으로, 국방부 장관으로 전쟁과 행정 그리고 외교까지 1인 3역을 해낸 것이다. <류성룡의 징비>는 임진왜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조명한 책으로 역사적 사실과 함께 류성룡의 활약상, 즉 초유의 국난을 온몸으로 치러야 했던 치열한 세 가지 전쟁을 여실히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