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팔봉 초한지 3
원저 견위/평역 김팔봉책 소개
팔봉 김기진 선생이 ‘통일천하(統一天下)’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초한지(楚漢誌)』를 연재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휴전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54년 3월이다. 이 작품은 다음 해 10월까지 총 562회를 연재하는 동안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 팔봉 선생은 ‘통일천하’ 연재가 성공리에 끝나자 곧바로 같은 제목의 단행본을 간행했다가 1984년에 어문각에서 이전의 ‘통일천하’를 다시 단행본으로 펴내며 제명을 『초한지』로 변경했다. 그러면서도 ‘통일천하’라는 옛 제목을 왼편에 그대로 살려둔 것은 아마도 옛 제목인 ‘통일천하’가 지닌 대중적 친숙함과 성공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국내 독자들에게 친숙한 <초한지>라는 이름이 처음 알려지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역사와 사연을 가지고 있는 『초한지』, 그중에서도 거의 창작에 가까운 번역의 형태를 취함으로써 우리나라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변형된, 어떤 번역보다도 역자의 노고가 깊게 서려 있는 팔봉 선생의 『초한지』가 36년 만에 참신한 모습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책 속으로
3권
“한왕 유방은 이에 이르러 피할 길이 없소이다! 귀하의 마음대로 하오마는, 내 들으니 어진 사람은 액운을 당한 사람을 해치지 않고 사랑한다 하니, 그대 만일 나를 불쌍히 생각하거든 나로 하여금 멀리 도망하도록 내버려두시오. 후일 만일 천하를 얻으면 은혜를 갚으리다. 그러나 귀하가 만일 내게 동정하는 마음이 없고 강포한 초패왕에게 나를 잡아주고 싶다면 나 또한 사양하지 않고 결박을 당할 터이니 묶어가시오.”
한왕은 자기를 붙들려고 쫓아온 정공에게 이같이 말을 건넸다. 이십 간쯤 떨어져서 한왕의 말을 듣고 있던 정공은,
“알아들었습니다. 신이 평소에 한나라를 사모하던 터이온데 어떻게 대왕을 생포하겠습니까? 오늘 일은 대왕과 신, 두 사람만이 아는 사실로 해두시고 속히 피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눈을 속이기 위해 화살을 쏘겠습니다. 얼른 가십시오!”
이렇게 말했다. 한왕은 기뻤다.
그는 정공을 보고 고마운 뜻을 눈으로 표시한 후, 즉시 말머리를 돌려 동남방을 향해 다시 달렸다.
한참 달아나다가 그는 자신의 머리 위로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를 서너 번 들었다.
정공은 이같이 하여 한왕을 도망시키고 오던 길을 되돌아 군사를 이끌고 가다가 옹치를 만났다. 옹치는 다른 길로 한왕의 종적을 밟아오다가 여기서 정공을 만났던 것이다.
“한왕을 발견하지 못했는가?”
옹치는 정공을 보고 숨을 헐떡거리면서 말 위에 앉아 이같이 물었다,
“한왕이 달아나는 것을 보았네! 그런데 말이야, 한왕을 향해 여러 번 화살을 쏘았지만 원체 한왕이 빨리 달아나는 바람에 화살이 맞아야지! 그러는 동안에 한왕의 형적이 눈에 보이지 않고 없어졌기에 하는 수 없이 돌아가는 길일세.” -최초의 일전 중에서
모든 군사들은 놀랐다.
‘주먹밥을 서서 먹어라! 내일 아침은 성안에 들어가서 회식한다! 도대체 이게 웬일일까?’
그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했으나, 명령대로 했다.
새벽때가 되자 한신은 금만수의 강가에 있는 중군에서 나와, 친히 일만 명의 군사를 인솔하여 장이와 함께 대장기(旗)를 쳐들고 선두에 서서 진문을 나왔다. 북소리, 꽹과리 소리를 요란스럽게 울리며 성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조왕과 진여는 성문 위에서 이것을 보고 쫓아나갔다.
“한신이란 놈이 용병 작전을 잘한다더니 강물을 등지고 진을 치고 있으니 저놈들을 모조리 몰아 강물 속에 떨어뜨리자!”
진여는 이렇게 부하들에게 이르고 한신에게 달려들었다.
한신은 두어 번 싸우는 체하더니 장이와 함께 깃발도 내던지고 달아나버렸다.
진여는 군사를 휘동하여 추격했다. 한신의 군사는 깃발과 북을 모조리 땅바닥에 함부로 내던지고 도망해버렸다. 가지각색의 크고 작은 깃발과 북이 발에 가로 거리끼어 조나라 군사는 걸음을 걷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적의 뒤에는 강물이 흐르고 있어 쫓겨가는 적을 모조리 강물 속에 집어넣을 수 있다는 생각에 조나라 군사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 그들은 정신없이 제각기 앞을 다투어 쫓아가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한신의 그림자를 잃어버렸다. -거침없는 진격 중에서
팔봉 김기진 선생이 ‘통일천하(統一天下)’라는 제목으로 <동아일보>에 『초한지(楚漢誌)』를 연재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휴전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54년 3월이다. 이 작품은 다음 해 10월까지 총 562회를 연재하는 동안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 팔봉 선생은 ‘통일천하’ 연재가 성공리에 끝나자 곧바로 같은 제목의 단행본을 간행했다가 1984년에 어문각에서 이전의 ‘통일천하’를 다시 단행본으로 펴내며 제명을 『초한지』로 변경했다. 그러면서도 ‘통일천하’라는 옛 제목을 왼편에 그대로 살려둔 것은 아마도 옛 제목인 ‘통일천하’가 지닌 대중적 친숙함과 성공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국내 독자들에게 친숙한 <초한지>라는 이름이 처음 알려지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역사와 사연을 가지고 있는 『초한지』, 그중에서도 거의 창작에 가까운 번역의 형태를 취함으로써 우리나라 사람들의 구미에 맞게 변형된, 어떤 번역보다도 역자의 노고가 깊게 서려 있는 팔봉 선생의 『초한지』가 36년 만에 참신한 모습으로 다시 출간되었다.
책 속으로
3권
“한왕 유방은 이에 이르러 피할 길이 없소이다! 귀하의 마음대로 하오마는, 내 들으니 어진 사람은 액운을 당한 사람을 해치지 않고 사랑한다 하니, 그대 만일 나를 불쌍히 생각하거든 나로 하여금 멀리 도망하도록 내버려두시오. 후일 만일 천하를 얻으면 은혜를 갚으리다. 그러나 귀하가 만일 내게 동정하는 마음이 없고 강포한 초패왕에게 나를 잡아주고 싶다면 나 또한 사양하지 않고 결박을 당할 터이니 묶어가시오.”
한왕은 자기를 붙들려고 쫓아온 정공에게 이같이 말을 건넸다. 이십 간쯤 떨어져서 한왕의 말을 듣고 있던 정공은,
“알아들었습니다. 신이 평소에 한나라를 사모하던 터이온데 어떻게 대왕을 생포하겠습니까? 오늘 일은 대왕과 신, 두 사람만이 아는 사실로 해두시고 속히 피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눈을 속이기 위해 화살을 쏘겠습니다. 얼른 가십시오!”
이렇게 말했다. 한왕은 기뻤다.
그는 정공을 보고 고마운 뜻을 눈으로 표시한 후, 즉시 말머리를 돌려 동남방을 향해 다시 달렸다.
한참 달아나다가 그는 자신의 머리 위로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를 서너 번 들었다.
정공은 이같이 하여 한왕을 도망시키고 오던 길을 되돌아 군사를 이끌고 가다가 옹치를 만났다. 옹치는 다른 길로 한왕의 종적을 밟아오다가 여기서 정공을 만났던 것이다.
“한왕을 발견하지 못했는가?”
옹치는 정공을 보고 숨을 헐떡거리면서 말 위에 앉아 이같이 물었다,
“한왕이 달아나는 것을 보았네! 그런데 말이야, 한왕을 향해 여러 번 화살을 쏘았지만 원체 한왕이 빨리 달아나는 바람에 화살이 맞아야지! 그러는 동안에 한왕의 형적이 눈에 보이지 않고 없어졌기에 하는 수 없이 돌아가는 길일세.” -최초의 일전 중에서
모든 군사들은 놀랐다.
‘주먹밥을 서서 먹어라! 내일 아침은 성안에 들어가서 회식한다! 도대체 이게 웬일일까?’
그들은 모두 이렇게 생각했으나, 명령대로 했다.
새벽때가 되자 한신은 금만수의 강가에 있는 중군에서 나와, 친히 일만 명의 군사를 인솔하여 장이와 함께 대장기(旗)를 쳐들고 선두에 서서 진문을 나왔다. 북소리, 꽹과리 소리를 요란스럽게 울리며 성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조왕과 진여는 성문 위에서 이것을 보고 쫓아나갔다.
“한신이란 놈이 용병 작전을 잘한다더니 강물을 등지고 진을 치고 있으니 저놈들을 모조리 몰아 강물 속에 떨어뜨리자!”
진여는 이렇게 부하들에게 이르고 한신에게 달려들었다.
한신은 두어 번 싸우는 체하더니 장이와 함께 깃발도 내던지고 달아나버렸다.
진여는 군사를 휘동하여 추격했다. 한신의 군사는 깃발과 북을 모조리 땅바닥에 함부로 내던지고 도망해버렸다. 가지각색의 크고 작은 깃발과 북이 발에 가로 거리끼어 조나라 군사는 걸음을 걷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러나 적의 뒤에는 강물이 흐르고 있어 쫓겨가는 적을 모조리 강물 속에 집어넣을 수 있다는 생각에 조나라 군사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 그들은 정신없이 제각기 앞을 다투어 쫓아가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한신의 그림자를 잃어버렸다. -거침없는 진격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