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의 아들
앰브로스 비어스엄폐물이 없는 개활지 앞에서 군대가 멈춰있다. 그대로 전진하기에는 개활지와 산등성이 너머 적군이 있을 위험이 크다. 적군의 유무를 알아내는 방법은 누군가 가서 보는 것이다. 대개는 척후병과 정찰대가 이 임무를 맡지만 자칫 큰 희생이 따른다. 한 기병이 혼자 이 임무를 맡겠다고 나선다. 그는 적을 발견한다면 아군이 보는 앞에서 죽을 것이고 적이 없다면 무사 귀환할 것이다. 둘 중에 하나다. 죽더라도 적의 전력이 확실히 드러나는 상황에서 죽어야한다. 기병은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1만의 전우는 그 모습에 울컥하고 감정에 북받친다. 그러나 예상 밖의 명령이 떨어지고...
<책 속에서>
산들바람이 부는 날, 화창한 풍광. 전방과 좌우에는 개활지, 후방에는 숲. 이 숲의 가장자리에는 엄폐물이 없는 그 개활지를 앞에 두고 거기로 진입하지 못하는 군대의 긴 열이 정지해 있다. 숲은 그들의 활기로 넘치고, 알 수 없는 소음으로 가득하다. 보병의 진격을 엄호하기 위해 배치 중인 덜거덕거리는 포병대의 포차, 병사들의 흥얼거림과 중얼거림, 나무 사이 마른 잎을 밟는 무수한 발소리, 목이 쉰 장교들의 구령 소리......
전방에 멀찍이 떨어져 대원의 일부가 노출되어 있는 기병 대다수는 가로막힌 진군 방향으로 1.5킬로미터쯤에 있는 산등성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전투 명령에 따라 숲 속을 뚫고 온 이 막강 병력이 개활지라는 커다란 장애물에 봉착한 것이다. 1.5킬로미터쯤 떨어진 완만한 산등성이는 겉보기에 불길하다. 마치 ‘전방 주시!’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산등성이를 따라 왼쪽과 오른쪽으로 멀리까지 돌벽이 늘어서 있다. 돌벽 뒤에는 울타리, 울타리 뒤에는 흡사 산개 명령이라도 받은 듯한 나무들의 우듬지가 보인다. 그리고 나무 사이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그것을 알아야 한다.
어제 그리고 그보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어딘가에서 싸우고 있었다. 언제나 포성과 함께 간간이 날카로운 총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아군의 것인지 적군의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환호성 속에서 우리는 전세를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오늘 새벽녘에 적군이 퇴각했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 번번이 공략에 실패했던 적군의 토루를 지나 버려진 병영의 파편들을 헤치고, 죽은 적군의 무덤을 거쳐 그 너머 숲 속으로 들어왔다.
지은이 앰브로스 비어스(Ambrose Gwinnett Bierce)
미국 남북전쟁에 참전한 후 기자와 비평가로 샌프란시스코, 런던, 워싱턴에서 활동했다. 죽음과 공포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한 냉소적인 단편소설을 썼다. 1913년 미국 생활에 싫증을 느껴, 당시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던 멕시코로 갔다가 1914년 1월 11일 멕시코에서 실종됐다. 오지나가 포위 공격 때 살해당했으리라 추정되지만 정확한 사망 경위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19세기 철도 법안을 둘러싼 비리를 파헤쳐 저널리스트로도 명성을 떨쳤으며, 칸 영화제 수상 단편 「아울 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 An Occurrence at Owl Creek Bridge」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불안이나 죽음의 공포 등 영혼의 극한적인 상태를 에드거 앨런 포의 전통에 따라 표현해 한때 포와 비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텔레파시 등 초자연적인 소재를 다룬 괴기 소설을 주로 쓴 탓에 인기에 비해 문학성은 인정받지 못했다. 삼류 괴기물로 평가절하 됐던 비어스의 작품은 1964년 그의 사후 50년 만에 미국의 한 출판사가 괴기 소설전집에 그의 작품을 소개하면서부터 재조명되었다.
옮긴이 정진영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상상에서는 고딕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잿빛의 종말론적 색채를 좋아하나 현실에서는 하루하루 장밋빛 꿈을 꾸면서 살고 있다. 고전 문학 특히 장르 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기획과 번역을 통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려고 노력 중이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작가와 작품을 재조명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 스티븐 킹의 『그것』, 『러브크래프트 전집』, 『세계 호러 걸작선』, 『뱀파이어 걸작선』, 『펜타메로네』, 『좀비 연대기』 등을 번역했다.
<책 속에서>
산들바람이 부는 날, 화창한 풍광. 전방과 좌우에는 개활지, 후방에는 숲. 이 숲의 가장자리에는 엄폐물이 없는 그 개활지를 앞에 두고 거기로 진입하지 못하는 군대의 긴 열이 정지해 있다. 숲은 그들의 활기로 넘치고, 알 수 없는 소음으로 가득하다. 보병의 진격을 엄호하기 위해 배치 중인 덜거덕거리는 포병대의 포차, 병사들의 흥얼거림과 중얼거림, 나무 사이 마른 잎을 밟는 무수한 발소리, 목이 쉰 장교들의 구령 소리......
전방에 멀찍이 떨어져 대원의 일부가 노출되어 있는 기병 대다수는 가로막힌 진군 방향으로 1.5킬로미터쯤에 있는 산등성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전투 명령에 따라 숲 속을 뚫고 온 이 막강 병력이 개활지라는 커다란 장애물에 봉착한 것이다. 1.5킬로미터쯤 떨어진 완만한 산등성이는 겉보기에 불길하다. 마치 ‘전방 주시!’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산등성이를 따라 왼쪽과 오른쪽으로 멀리까지 돌벽이 늘어서 있다. 돌벽 뒤에는 울타리, 울타리 뒤에는 흡사 산개 명령이라도 받은 듯한 나무들의 우듬지가 보인다. 그리고 나무 사이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그것을 알아야 한다.
어제 그리고 그보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어딘가에서 싸우고 있었다. 언제나 포성과 함께 간간이 날카로운 총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아군의 것인지 적군의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환호성 속에서 우리는 전세를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오늘 새벽녘에 적군이 퇴각했다. 우리는 얼마 전까지 번번이 공략에 실패했던 적군의 토루를 지나 버려진 병영의 파편들을 헤치고, 죽은 적군의 무덤을 거쳐 그 너머 숲 속으로 들어왔다.
지은이 앰브로스 비어스(Ambrose Gwinnett Bierce)
미국 남북전쟁에 참전한 후 기자와 비평가로 샌프란시스코, 런던, 워싱턴에서 활동했다. 죽음과 공포라는 주제를 바탕으로 한 냉소적인 단편소설을 썼다. 1913년 미국 생활에 싫증을 느껴, 당시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던 멕시코로 갔다가 1914년 1월 11일 멕시코에서 실종됐다. 오지나가 포위 공격 때 살해당했으리라 추정되지만 정확한 사망 경위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19세기 철도 법안을 둘러싼 비리를 파헤쳐 저널리스트로도 명성을 떨쳤으며, 칸 영화제 수상 단편 「아울 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 An Occurrence at Owl Creek Bridge」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불안이나 죽음의 공포 등 영혼의 극한적인 상태를 에드거 앨런 포의 전통에 따라 표현해 한때 포와 비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텔레파시 등 초자연적인 소재를 다룬 괴기 소설을 주로 쓴 탓에 인기에 비해 문학성은 인정받지 못했다. 삼류 괴기물로 평가절하 됐던 비어스의 작품은 1964년 그의 사후 50년 만에 미국의 한 출판사가 괴기 소설전집에 그의 작품을 소개하면서부터 재조명되었다.
옮긴이 정진영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상상에서는 고딕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잿빛의 종말론적 색채를 좋아하나 현실에서는 하루하루 장밋빛 꿈을 꾸면서 살고 있다. 고전 문학 특히 장르 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기획과 번역을 통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려고 노력 중이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작가와 작품을 재조명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 스티븐 킹의 『그것』, 『러브크래프트 전집』, 『세계 호러 걸작선』, 『뱀파이어 걸작선』, 『펜타메로네』, 『좀비 연대기』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