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해협 해전의 영웅 백두산함 최용남 함장의 리더십고급제대 리더십 사례
이상복최용남 중령은
6·25전쟁 발발 다음 날인 1950년 6월 26일
국민성금으로 완성된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을 이끌고 출정,
부산 동북방 해상에서 1천 t급 북한 무장수송선을
발견해 추적 끝에 격침했다.
전투는 해군 사상 최초의 단독해전으로
이 해전의 승리로 아군은 해상
통제권을 확보함으로써
6?25전쟁 중 해전의
전환점이 되었다
창군 당시 우리 해군은 제대로 무장을 갖춘 함정은 한 척도 없었다.
초대 해군참모총장이었던 손원일(孫元一, 1909~1980)제독은 해군전력 강화가 무엇보다도 최우선 정책 추진과제로 인식했다
우선 우리 해군 장병들이 먼저 한 마음으로 뭉쳐 전투함을 구입하기 로 결심하고 월급에서 장교 10%, 병조장 7%. 부사관과 수병 5%를 기부하도록 유도하였다 이 소식을 듣게 된 해군부인회에서도 뜨개질을 한 수예품을 모아 팔고 삯바느질에 의복 세탁까지 해가며 돈을 보탰다..
호놀룰루항에서 1950년 3월 16일 3인치 포를 장착하고 딱 사흘 연습한 뒤 출발했다. 도중에 괌에 들러 포탄을 사서 싣고 진해항에 들어온 게 그해 4월 10일이었다.
이렇게 백두산함은 1950년 6?25전쟁 발발 당시 해군이 보유하고 있던 유일한 전투함이었다.
백두산함을 지휘한 최용남 함장의 위기상황시 제반 난관과 역경을 극복하고 승리를 쟁취한 탁월한 전장 리더십을 알려 준다.
6·25전쟁 발발 다음 날인 1950년 6월 26일
국민성금으로 완성된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을 이끌고 출정,
부산 동북방 해상에서 1천 t급 북한 무장수송선을
발견해 추적 끝에 격침했다.
전투는 해군 사상 최초의 단독해전으로
이 해전의 승리로 아군은 해상
통제권을 확보함으로써
6?25전쟁 중 해전의
전환점이 되었다
창군 당시 우리 해군은 제대로 무장을 갖춘 함정은 한 척도 없었다.
초대 해군참모총장이었던 손원일(孫元一, 1909~1980)제독은 해군전력 강화가 무엇보다도 최우선 정책 추진과제로 인식했다
우선 우리 해군 장병들이 먼저 한 마음으로 뭉쳐 전투함을 구입하기 로 결심하고 월급에서 장교 10%, 병조장 7%. 부사관과 수병 5%를 기부하도록 유도하였다 이 소식을 듣게 된 해군부인회에서도 뜨개질을 한 수예품을 모아 팔고 삯바느질에 의복 세탁까지 해가며 돈을 보탰다..
호놀룰루항에서 1950년 3월 16일 3인치 포를 장착하고 딱 사흘 연습한 뒤 출발했다. 도중에 괌에 들러 포탄을 사서 싣고 진해항에 들어온 게 그해 4월 10일이었다.
이렇게 백두산함은 1950년 6?25전쟁 발발 당시 해군이 보유하고 있던 유일한 전투함이었다.
백두산함을 지휘한 최용남 함장의 위기상황시 제반 난관과 역경을 극복하고 승리를 쟁취한 탁월한 전장 리더십을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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