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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의 원칙 중심의 신상필벌 리더심 커버
제갈량의 원칙 중심의 신상필벌 리더심
이상복
삼국지에서 공정함과 엄격한 형벌을 시행한 대표적 인물이 제갈량(諸葛亮)이다. 그는 뛰어난 지략가로도 유명하지만 상벌(賞罰)을 공정하게 시행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즉 사사로운 이익이나 감정을 개입시켜 일을 처리하지 않아 스스로 '아심여칭(我心如秤)'하다고 했다.

아심여칭이란 '내 마음은 저울과 같다.'라는 뜻으로, 저울처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공평무사(公平無私)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는 약자에 강하지 않고 강자에 약하지 않은 형평성과 공정함을 의미한다.

우선 제갈량은 원칙에 충실한 리더였다. 그는 인재를 기용할 때의 기준은 도덕성(道德性)을 제일 중시하였다.

그는 주군을 모실 때 심사숙고(深思熟考)했다. 그가 27세때 유비의 삼고초려(三顧草廬)의 노력 끝에 만난 이후 오장원에서 죽을 때까지 27년간 유비가 지향하는 ‘한실(漢室)의 회복’과 ‘천하통일(天下統一)라는 일관된 신념으로 충의를 지키며 주군을 보필하였다.

유비 뿐만 아니라 무능한 유선을 충의로 끝까지 보좌하면서 사심 없이 도덕과 원칙을 바탕으로 투명한 정치를 한 탁월한 리더였다.

또한 정책에 책임을 지고 신상필벌(信賞必罰)과 믿음을 근본으로 과감한 개혁정책을 단행하였다. '출사표(出師表)'에서 제갈량은 북벌에 나서기 전 어린 황제 유선에게 신상필벌을 공정히 하여 조정의 기강확립과 신하들의 충성심을 유도하도록 신신당부한 상소문을 올렸다.

뿐만 아니라 실제 북벌과정에서 크게 잘못을 저질은 마속과 이엄(李嚴)을 징벌할 때 제갈량은 '아심여칭'으로 공평무사하게 처리한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그는 촉(蜀)의 모든 실권(實權)을 쥐고 있었음에도 그 막강한 권력을 사리사욕(私利私慾)의 수단으로 남용하지 않았다.

또한 매사에 공(公)과 사(私)를 구분하고 솔선수범(率先垂範)하였다. 사망 후 그의 재산은 뽕나무 800그루와 거친 땅 15고랑이 전부였다. 무덤 크기는 관이 들어갈 정도로 하고 염할 때는 평소의 옷을 쓰라고 하여 마지막 까지 검소함을 잃지 않았다. 제갈량의 원칙중심의 신상필벌 리더십 사례를 살펴 보기로 한다.


출판사

유페이퍼

출간일

전자책 : 2024-07-04

파일 형식

PDF(2.25 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