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역사와 문명 몽골지배하 러시아 분권 체계와 공물 구조
윤재호13세기 몽골의 러시아 정복은 단순한 지배 이상의 복잡한 통치 구조를 낳았다. 바투의 키예프 함락으로 시작된 몽골의 러시아 지배는 바스카크 제도를 통한 공물 징수와 사라이 궁정의 공후 서열 결정이라는 이원적 지배 체계를 확립했다. 특히 킵차크 칸국의 수도 사라이에서 이루어진 야를릭 수여는 러시아 공후들의 권력 구도를 결정짓는 핵심 의례였으며, 이는 후일 모스크바 공국의 부상과 러시아 통일의 근간이 되었다.
공물 징수 제도는 러시아 각 지역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노브고로드는 은화 납부라는 특별 공물 제도를 통해 한자동맹과의 무역권을 보장받았고, 프스코프는 독자적인 상인 길드를 발전시켰다. 1257년 대규모 인구조사를 기점으로 체계화된 공물 제도는 바스카크 호드인들의 직접 징수 방식에서 점차 현지 공후들의 대리 징수 체계로 변화했으며, 1380년 쿠리카닌 제도의 도입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러시아 사회 내부의 권력 구조도 몽골 지배하에서 큰 변화를 겪었다. 정교회는 키프리안 대주교 시기에 면세 특권을 획득했고, 보야르 귀족들은 포메스티예 제도를 통해 새로운 토지 보유 형태를 발전시켰다. 군사 조직은 몽골식 투멘제의 도입으로 재편되었으며, 이반 칼리타와 바실리 2세와 같은 모스크바 공들은 조세 징수권과 면세 특권의 확대를 통해 자신들의 세력을 강화했다.
공물 징수 제도는 러시아 각 지역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노브고로드는 은화 납부라는 특별 공물 제도를 통해 한자동맹과의 무역권을 보장받았고, 프스코프는 독자적인 상인 길드를 발전시켰다. 1257년 대규모 인구조사를 기점으로 체계화된 공물 제도는 바스카크 호드인들의 직접 징수 방식에서 점차 현지 공후들의 대리 징수 체계로 변화했으며, 1380년 쿠리카닌 제도의 도입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러시아 사회 내부의 권력 구조도 몽골 지배하에서 큰 변화를 겪었다. 정교회는 키프리안 대주교 시기에 면세 특권을 획득했고, 보야르 귀족들은 포메스티예 제도를 통해 새로운 토지 보유 형태를 발전시켰다. 군사 조직은 몽골식 투멘제의 도입으로 재편되었으며, 이반 칼리타와 바실리 2세와 같은 모스크바 공들은 조세 징수권과 면세 특권의 확대를 통해 자신들의 세력을 강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