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러멜 패러독스투비 2025 SF/미스터리 앤솔로지
정해연“건강에 좋지 않은 캐러멜을 먹는 것처럼 삶은 우리를 파괴하는 모순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모순들이 우리를 살게 만든다.”
-서문 중에서-
연재 플랫폼 투비컨티뉴드에서 화제를 얻으며 선연재 되었던 '모순' 앤솔로지가 SF/미스터리 앤솔로지 「캐러멜 패러독스」로 출간되었다. 편집부는 정해연, 김청귤, 범유진, 현찬양 작가에게 “우리 삶의 모순을 담은 이야기”, ‘PARADOX(역설)’를 주제로 이야기를 써달라고 요청했고, 네 명의 작가들은 모순과 관련해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전했고, 편집부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평범한 일상 속의 네 가지 모순이 앤솔로지에 담겼다.
“삶이란 원래, 캐러멜처럼 부드럽게 모순적.”이라는 작가 노트의 말처럼 우리 삶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모순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모순들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사랑의 양면성, 무쓸모의 쓸모, 다정의 잔인함과 관계의 모순 등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감정들의 모순을 꿰뚫고, 그 존재들을 캐러멜과 같이 부드럽게 감싼다. 올여름, 당신 삶의 모순을 담은 캐러멜과 함께 달콤하고 위험한 이야기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책속에서
우리는 쉽게 말합니다. 시간을 돌려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렇게는 하지 않을 거라고요. 하지만 실제로 시간을 돌렸을 때, 정말로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순간에는 분명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사정이 있었을 테니까요.
―정해연, 작가노트
배탈은 예고 없이, 순식간에 찾아오잖아요. 버스 안에서 배탈을 잠재울 수 있는 초능력이 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란 적이 있는데, 그 생각에서 출발한 소설입니다. (...) 내가 살아가기 위해 무언가를 소비하고 죽여야 한다는 게 가장 큰 모순인 것 같습니다.
―김청귤, 작가노트
사람은 타인을 갈구함과 동시에 타인을 경계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모두 파악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대체 있을까요? (...) 달콤한 이야기들은 우리를 살리기도, 죽이기도 합니다. 삶이란 원래, 카라멜처럼 부드럽게 모순적이니까요.
―범유진, 작가노트
우리는 살면서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가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남에게 상처를 준 사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현찬양, 작가노트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그래, 이혼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혼을 얘기하기가 두려웠다. 그러면 또 맞을 것 같았다. 맞고 나면 며칠은 괜찮았다. 술이 죄지, 하고 생각한 적도 있다. 아비 없는 아들을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중엔 모든 것에 무력해졌다. 밥버러지, 쓰레기, 정신 나간 년. 그런 소리들을 듣다 보니 남편의 그늘 없이 밥을 벌어먹고 살 수 없을 것도 같았다.
―정해연, 「그녀가 돌아왔을 때」
“안 해본 게 없습니다. 시중에 있는 유산균이란 유산균은 다 먹어보고, 좋은 균을 얻어 요거트를 만들어서 먹고, 체질 때문인지 한약도 지어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매운 거, 짠 거, 신 거 일절 안 먹고 건강식만 먹기도 하고, 매일 8시간씩 자고……. 운동으로 장기까지 단련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힘주다가 큰일날 뻔 한 뒤로는 헬스장에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끔찍합니다. (...) 유아영 씨. 저의 영웅이 되어주지 않겠습니까?”
―김청귤, 「영웅의 영웅」
전체 인구 비율의 70%가 노년층인 초고령화 현상으로 실질적인 국가 소멸 위기에 대응하는데 허덕거리던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EC 프로그램 교육 특별법’을 제정했다. 법의 주요 골지는 미성년이 성인에게 함부로 감정적 교류를 시도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미성년자 보호라는 포장을 뒤집어쓰고 정치적 입지를 늘려 나갈 절호의 찬스를 관계자들이 놓칠 리 없었다. 그 결과, EC는 경찰을 웃도는 권한을 가진 행정 기관이 되었다.
―범유진, 「다정한 공범」
비합리적인 어린아이는 거짓말을 하고, 합리적인 어른은 그 거짓말 뒤에 숨어 침묵을 지킨다.
―범유진, 「다정한 공범」
전교 2등은 공포에 휩싸였다.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자신이 죽인 전교 1등의 귀신이 틀림없었다.
“여기도 없네?”하는 목소리.
그리고 다시 쿵쿵 쿵, 문을 촤르륵,
쿵쿵 쿵, 촤르륵,
“여기도 없네?”
―현찬양, 「자정의 학교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