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불시에서 이백 (李白)의 시상 - 도자기 정자
주경민이백(李白) ‘시, 번(역)안‘에 얽힌 소네트
- 불어 번역시와 독어 번안시에 나타난 오류와 오해
이백 (李白) 시를 1862년 중국학자 생드니가 불어로 번역했지.
그리고 시인 발테르도 1867년 시선의 시를 산문체로 번역했다네.
이 두 번역이 독일 시인에게 이백 시정이 ‘번안시‘로 스며들었다네.
젊은 브레히트 본 것처럼, “동양 고전의 소생이 곧 르네상스“ 되었지.
그런데, 브레히트 시 “살아남은 자의 분노“ 같이 오해를 남기고 있지.
한국인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분노‘를 ‘슬픔‘으로 이해했다네.
이처럼, “宴陶家亭子(연도가정자)“가 “도자기 정자“로 이해되었다네!
발테르가 ‘陶家 도가‘를 ‘도자기 집‘으로 번역한 오역의 결과였지.
이렇게 150여년 동안 미아(迷兒)로 만들었지: “宴陶家亭子(연도가정자)“를
단 두 글자 ‘陶家 도가‘를 ‘가문‘ 아닌 ‘집‘으로 본 엄청난 결과인 게야.
시인들은 ‘미아‘를 마음껏 독어권으로 입양했었다네: “도자기 정자“를!
이백 시가 남긴 동(서)양 사이에 놓인 정신문화 교류의 현주소인 게야.
그대에게 스며들도록 모았네: 이백시, 불(독)어 번역(안)시와 한글 번역시를!
유럽에서 미아된 시를 주경민은 시선 이백(李白)에게 되돌려 주는 게야!
- 불어 번역시와 독어 번안시에 나타난 오류와 오해
이백 (李白) 시를 1862년 중국학자 생드니가 불어로 번역했지.
그리고 시인 발테르도 1867년 시선의 시를 산문체로 번역했다네.
이 두 번역이 독일 시인에게 이백 시정이 ‘번안시‘로 스며들었다네.
젊은 브레히트 본 것처럼, “동양 고전의 소생이 곧 르네상스“ 되었지.
그런데, 브레히트 시 “살아남은 자의 분노“ 같이 오해를 남기고 있지.
한국인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분노‘를 ‘슬픔‘으로 이해했다네.
이처럼, “宴陶家亭子(연도가정자)“가 “도자기 정자“로 이해되었다네!
발테르가 ‘陶家 도가‘를 ‘도자기 집‘으로 번역한 오역의 결과였지.
이렇게 150여년 동안 미아(迷兒)로 만들었지: “宴陶家亭子(연도가정자)“를
단 두 글자 ‘陶家 도가‘를 ‘가문‘ 아닌 ‘집‘으로 본 엄청난 결과인 게야.
시인들은 ‘미아‘를 마음껏 독어권으로 입양했었다네: “도자기 정자“를!
이백 시가 남긴 동(서)양 사이에 놓인 정신문화 교류의 현주소인 게야.
그대에게 스며들도록 모았네: 이백시, 불(독)어 번역(안)시와 한글 번역시를!
유럽에서 미아된 시를 주경민은 시선 이백(李白)에게 되돌려 주는 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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