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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애적 결혼이 남긴 것들 사랑이 아닌 것이 결혼을 지배할 때 나타나는 영적 구조
김홍찬

사랑이라 믿었던 것이 사실은 구조였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바다에 한 물개가 있었다. 그의 등에는 바다속의 폐기된 낚시줄이 얽혀 있었다. 줄은 오래전부터 등을 감고 있었다. 그로인해 물개가 커갈수록 살은 점점 깊게 패여 갔다.
그러나 물개는 어느 때까지는 문제없이 헤엄치며 먹이를 잡았다. 또 무리와 함께 바다를 돌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믿었다. 줄은 자신을 잡아 당기지 않았고 방향을 바꾸지도 않았다.
물개는 이 줄이 자기 몸에 묶여있는지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몸에 뭔가 이상이 느껴지기는 했다. 그렇지만 스스로 인정했다.
“이건 나를 묶는 게 아니야.”“원래 이렇게 살아왔어.”
물개는 한번도 줄이 없는 몸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물개들이 바닷가 해견가에 무리를 지어 모여 있을 때 낯선 그림자들이 다가왔다. 사람들은 뜰채를 들고 물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손에는 줄을 끊을 수 있는 도구가 있었다.
물개는 순간 멈칫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물개는 사람들의 얼굴을 읽지 못했다.
그러나 몸은 알고 있었다.
살 속에 박힌 것을 당기면 더 크게 찢어진다는 것
누군가 손대는 순간 모든 것이 드러난다는 것
그래서 물개는 필사적으로 달아났다.
사람들은 말했다
“왜 도망치지?”“도와주려는 건데.”
그러나 물개에게 그 손길은 도움이 아니라 위험의 신호였다.
줄이 없는 삶은 자유가 아니라 알 수 없는 고통처럼 느껴졌다.
물개는 깊은 곳으로 내려가 숨을 고르며 다시 헤엄쳤다.
줄은 여전히 등에 있었고 살은 더 깊이 패였다. 그러나 그는 익숙한 리듬으로 움직였다.
“이게 내 삶이야.”“나는 아직 움직일 수 있어.”
물개는 상처를 건드리는 손길이 더 큰 고통이 될까 봐 몸이 먼저 피한 것이다. 또는 피해자는 묶여 있었던 것이 아니라 묶인 상태로 살아가는 법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다. 여기서 물개를 묶고 있는 낚시 줄은 가해자가 아니라 삶의 연속으로 오인된 구조적 현실이었다. 그래서 도망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기억이었다.
낚시줄에 묶인 물개를 보면서 나는 오랫동안 하나의 질문을 붙들고 있었다. 왜 어떤 결혼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가게 만드는 반면, 왜 어떤 결혼은 시간이 흐를수록 한 사람의 생기를 조금씩 갉아먹는가.
처음에는 성격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다음에는 의사 소통의 문제라고 여겼다. 그다음에는 상처, 환경, 운명 같은 말들로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이 모든 설명이 핵심을 비켜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문제는 감정이 아니었고 노력의 부족이 아니었다. 문제는 구조였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작동하는 내적 구조이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믿는다.“결혼했으니 사랑일 것이다.”“저렇게까지 함께 버티는 걸 보면 사랑일 것이다.”“상처를 주면서도 붙잡는 걸 보면, 그래도 사랑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삶은 그 믿음을 자주 배반한다.
어떤 관계에서는 사랑을 말할수록 숨이 막히고, 헌신 할수록 자신이 더 무너지며, 이해하려 애쓸수록 상대는 더 큰 희생을 강요한다.
그 관계 안에서 점점 말이 없어지고, 점점 자신을 의심하게 되며,“내가 너무 예민한가?”라는 질문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되뇌게 된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탓하거나, 상대의 성격을 탓하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모든 반응 이전에 한 걸음 더 뒤로 물러서서 묻는다.
이 결혼은 정말 사랑의 결합이었는가, 아니면 사랑처럼 보이도록 설계된 구조였는가.
왜 어떤 결혼은 사람을 살리는 대신 무너뜨리는가?
사랑은 본래 사람을 살린다. 사랑은 상대의 생명을 확장시키고, 존재를 존중하며, 함께 있을수록 각자가 더 또렷해지게 만든다.
그런데 왜 그 반대의 일이 일어나는가.
왜 함께할수록 점점 작아지기만 하는가.
왜 어떤 부부 사이에서는 늘 한 사람은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야 하고 한 사람은 참아야 하며, 희생당해야만 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이 책은 감정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누가 더 상처받았는지의 경합에도 서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이 관계를 움직이고 있는 중심은 무엇인가. 사랑인가, 자기애 인가?
이 책은“이렇게 하라”는 목록을 제시하지 않는다.
“당장 떠나라”거나“무조건 참고 견뎌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구조를 보지 못한 채 내리는 선택은 또 다른 구조 속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책이 하려는 일은 단 하나다.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는 것.
관계의 표면 아래에서 무엇이 작동하고 있었는지, 왜 반복이 멈추지 않았는지, 왜 어떤 사람은 떠난 뒤에도 오랫동안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를 말이 되는 언어로 설명하는 것이다.
이해는 곧 해방의 시작이다. 이해하지 못한 채 떠난 사람은 몸은 빠져나와도 영혼은 여전히 그 구조 안에 남아 있다.
이 책은 누군가를 악인으로 고발하기 위해 쓰이지 않았다.
자기애적 결혼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단순히 나누는 일은 오히려 또 다른 오해를 만든다. 자기애는 특별히 악한 소수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을 왜곡시키는 하나의 질서다. 그리고 그 질서는 결혼이라는 제도, 종교적 언어, 도덕적 명분을 입을 때 가장 오래, 가장 깊게 작동한다.
이 책은 누구를 미워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구조를 인식하라고 요청한다. 왜냐하면 구조를 보는 순간,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상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그래도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건 아닐까”“그래도 내가 더 참았어야 했던 건 아닐까”라는 질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이 책은 당신이 그 질문을 처음으로 내려놓을 수 있도록 곁에 서 있을 뿐이다. 사랑은 사람을 줄어들게 만들지 않는다.
만약 어떤 결혼이 당신을 계속 작아지게 만들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던 구조의 작동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은 그 구조를 하나씩 해체해 나갈 것이다.

출간일

전자책 : 2026-01-12

파일 형식

PDF(2.83 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