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가강사의 공황장애 치유기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SJ민영프롤로그
저는 항상 배움에 목말라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학교에 다닐때 공부를 썩 잘한 것도 아니고
책은 거의 읽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남들하는 만큼만 하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제가 언제부턴가 배우고 싶은 욕구가 커졌습니다.
돌이켜보니 대기업에서 비서로 근무할때 제가 모시던 임원분은
남들보다 1시간은 아침 일찍 회사로 출근해 중국어 과외를 받고
하루 일정을 시작하셨습니다.
정말 대단하다 생각했습니다. 괜히 그 위치에 있는게 아니구나
생각했죠. 그러면서 다양한 방면에서 그 분을 통해 저에 대한
부족함을 많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존경하고 본받고는 싶었으나, 현실은 출퇴근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죠. 어쩌면 이때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에 일본인 엔지니어가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저에게는 중국어보다 일본어가 당장 필요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사내대학 관광일어통역과에 진학하여 낮에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저녁에는 2년 동안 공부하고 졸업을 했지요.
저는 일본인 동료가 있었기에 회화가 빨리 늘 수 있었습니다.
이제 와 보니 정말 감사한 일이네요.
그러곤 몇 년후 퇴사를 하고,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와
지금에 남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저는 현모양처가 꿈이었습니다.
현명한 아내, 현명한 엄마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제 자신이 하고 싶거나 해야하는 일은 꼭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을 갖고 있더라구요.
두 딸아이 임신 출산 육아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데는
요가만한 게 없었습니다.
한번 좋다고 여겨지면 지속적으로 하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요가를 시작한지 1년여만에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고
바로 저희 집 거실에서 서너명 모집해 요가수업을 시작했지요.
처음엔 무료로 했어요. 저도 초보라 경험이 필요했으니까요.
그러곤 9년여동안 쉬지 않고 디지털대학교 요가명상학과에 편입하여
졸업을 하고 여러 교육세미나도 다니며 배우고 회원분들에게
전달하고 알려드리는 강사활동을 했습니다.
요일별로 1, 2시간씩 수업을 했기에 어린아이 둘을 키우면서 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직업형태였어요.
그러곤 집안 살림에 아이들 학습, 감정 소통에 지칠 때쯤 요가수업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코로나로인해 강사활동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이 때가 지금의 제게 큰 계기가 되었어요.
제가 강사활동을 그만두게 된 건, 백신접종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두 딸아이도 처음에는 일반 소아과를 다니며 양약을 먹이다 열경기가 일어나는 걸 보고 정말 무서웠죠.
아이가 아프면 병원의사선생님이 처방해준 약만 의지하면 안되겠구나 생각이 들어 자연치유요법을 알게 되었고, 이후에는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가서 진찰과 약은 처방 받되, 엄마로써 제가 해줄 수 있는 처치방법들을 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고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엄마가 많이 알아야겠다는 것을요. 그렇게 두 아이다 건강하게 키우고 있습니다.
코로나 백신패스가 도입되기 전,
제 남편과 두 아이 모두 코로나확진이 되었습니다.
이때는 이름만 빼고 신상정보가 공개되는 때라 설마 모르겠지 했는데 동네에 순식간에 소문이 퍼지더라구요.
그렇게 우리 아이들이 받을 상처에 후유증에 마음 졸이며
한 달을 집안에서만 보냈습니다.
그때 저를 힘들게 했던 건, 주위에 시선이었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며 알게 되었죠.
주위에 시선을 신경쓴다는 건 우리 남편과 아이둘다 모두 심각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정말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었음을 알게 되었죠. 아이들은 코로나검사를 하지 않았으면 모르고 지나갔을 무증상상태였고, 남편은 일년에 한두번 앓는 감기기운에 불과했기 때문이죠. 그러곤 백신이
저는 항상 배움에 목말라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학교에 다닐때 공부를 썩 잘한 것도 아니고
책은 거의 읽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남들하는 만큼만 하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제가 언제부턴가 배우고 싶은 욕구가 커졌습니다.
돌이켜보니 대기업에서 비서로 근무할때 제가 모시던 임원분은
남들보다 1시간은 아침 일찍 회사로 출근해 중국어 과외를 받고
하루 일정을 시작하셨습니다.
정말 대단하다 생각했습니다. 괜히 그 위치에 있는게 아니구나
생각했죠. 그러면서 다양한 방면에서 그 분을 통해 저에 대한
부족함을 많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존경하고 본받고는 싶었으나, 현실은 출퇴근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죠. 어쩌면 이때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에 일본인 엔지니어가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저에게는 중국어보다 일본어가 당장 필요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사내대학 관광일어통역과에 진학하여 낮에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저녁에는 2년 동안 공부하고 졸업을 했지요.
저는 일본인 동료가 있었기에 회화가 빨리 늘 수 있었습니다.
이제 와 보니 정말 감사한 일이네요.
그러곤 몇 년후 퇴사를 하고,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와
지금에 남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저는 현모양처가 꿈이었습니다.
현명한 아내, 현명한 엄마가 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제 자신이 하고 싶거나 해야하는 일은 꼭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을 갖고 있더라구요.
두 딸아이 임신 출산 육아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데는
요가만한 게 없었습니다.
한번 좋다고 여겨지면 지속적으로 하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요가를 시작한지 1년여만에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하고
바로 저희 집 거실에서 서너명 모집해 요가수업을 시작했지요.
처음엔 무료로 했어요. 저도 초보라 경험이 필요했으니까요.
그러곤 9년여동안 쉬지 않고 디지털대학교 요가명상학과에 편입하여
졸업을 하고 여러 교육세미나도 다니며 배우고 회원분들에게
전달하고 알려드리는 강사활동을 했습니다.
요일별로 1, 2시간씩 수업을 했기에 어린아이 둘을 키우면서 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직업형태였어요.
그러곤 집안 살림에 아이들 학습, 감정 소통에 지칠 때쯤 요가수업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코로나로인해 강사활동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이 때가 지금의 제게 큰 계기가 되었어요.
제가 강사활동을 그만두게 된 건, 백신접종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두 딸아이도 처음에는 일반 소아과를 다니며 양약을 먹이다 열경기가 일어나는 걸 보고 정말 무서웠죠.
아이가 아프면 병원의사선생님이 처방해준 약만 의지하면 안되겠구나 생각이 들어 자연치유요법을 알게 되었고, 이후에는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가서 진찰과 약은 처방 받되, 엄마로써 제가 해줄 수 있는 처치방법들을 했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고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엄마가 많이 알아야겠다는 것을요. 그렇게 두 아이다 건강하게 키우고 있습니다.
코로나 백신패스가 도입되기 전,
제 남편과 두 아이 모두 코로나확진이 되었습니다.
이때는 이름만 빼고 신상정보가 공개되는 때라 설마 모르겠지 했는데 동네에 순식간에 소문이 퍼지더라구요.
그렇게 우리 아이들이 받을 상처에 후유증에 마음 졸이며
한 달을 집안에서만 보냈습니다.
그때 저를 힘들게 했던 건, 주위에 시선이었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며 알게 되었죠.
주위에 시선을 신경쓴다는 건 우리 남편과 아이둘다 모두 심각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정말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었음을 알게 되었죠. 아이들은 코로나검사를 하지 않았으면 모르고 지나갔을 무증상상태였고, 남편은 일년에 한두번 앓는 감기기운에 불과했기 때문이죠. 그러곤 백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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