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신동은 지금이재현과 떠나는 힐링여행/골목 시리즈-3
이재현창신동에는
위태롭게 보이는 화강암 바위 위에 집을 짓고 살아온 강한 사람들이 있다. 가파른 골목을 오르내리며 나눈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지 가늠할 수조차 없는 이곳은, 1914년 동명 제정 때 한성부의 방 가운데 인창방의 ‘창’과 순신방의 ‘신’자를 따와 ‘창신동’이라 불리게 되었고 일제 강점기에 화강암을 채석하며 깎아지른 절벽에 터를 잡았다 하여 ‘절개 마을’이라는 이름을 갖는다. 재봉틀소리 들들 거리는 봉제 골목으로 들어선다. 딱히 어디가 봉제 골목이랄 것도 없이 창신동 골목 구석구석 커튼 너머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는 여전히 창신동 일대가 봉제 골목임을 말한다.
1970년대 섬유 산업의 발달은 젊은이들을 도시로 몰려들게 했고 밤낮없이 봉제일을 하게 했던 그때와 달리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몇 집 건너 재봉틀은 돌아간다.
내 언니와 엄마가 치열하게 살아왔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 안은 골목에 애환의 그림자가 역력하다. 스팀다리미에서 나오는 연기와 열기로 여름은 후덥지근한 공기가 뿜어져 나오고 겨울은 손 내밀어 온기를 느끼고 싶게 한다.
골목에 오토바이가 쌩쌩 달린다.그들을 탓하지 말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길을 내어주라 당부한다. 전해야 할 옷감과 패턴을 가득 실은 오토바이가 시간을 다투는 골목, 창신동은 골목마다 보물이 가득하다. 골목에 접어들면 불쑥 고개 내미는 진귀한 풍경과 마주하게 되고 시장은 먹거리 또한 풍성하다.
창신동은 탐험을 부추긴다.
걷기만 하는데 다른 세상과 만날 수 있는 창신동으로 지금 출발하자!
위태롭게 보이는 화강암 바위 위에 집을 짓고 살아온 강한 사람들이 있다. 가파른 골목을 오르내리며 나눈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지 가늠할 수조차 없는 이곳은, 1914년 동명 제정 때 한성부의 방 가운데 인창방의 ‘창’과 순신방의 ‘신’자를 따와 ‘창신동’이라 불리게 되었고 일제 강점기에 화강암을 채석하며 깎아지른 절벽에 터를 잡았다 하여 ‘절개 마을’이라는 이름을 갖는다. 재봉틀소리 들들 거리는 봉제 골목으로 들어선다. 딱히 어디가 봉제 골목이랄 것도 없이 창신동 골목 구석구석 커튼 너머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는 여전히 창신동 일대가 봉제 골목임을 말한다.
1970년대 섬유 산업의 발달은 젊은이들을 도시로 몰려들게 했고 밤낮없이 봉제일을 하게 했던 그때와 달리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몇 집 건너 재봉틀은 돌아간다.
내 언니와 엄마가 치열하게 살아왔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 안은 골목에 애환의 그림자가 역력하다. 스팀다리미에서 나오는 연기와 열기로 여름은 후덥지근한 공기가 뿜어져 나오고 겨울은 손 내밀어 온기를 느끼고 싶게 한다.
골목에 오토바이가 쌩쌩 달린다.그들을 탓하지 말고 지나는 사람들에게 길을 내어주라 당부한다. 전해야 할 옷감과 패턴을 가득 실은 오토바이가 시간을 다투는 골목, 창신동은 골목마다 보물이 가득하다. 골목에 접어들면 불쑥 고개 내미는 진귀한 풍경과 마주하게 되고 시장은 먹거리 또한 풍성하다.
창신동은 탐험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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