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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열전 3 커버
사기 열전 3
사마천
사기(史記) 중 정수로 평가되는 중국의 고대 인물들을 다룬 전기
백이 열전을 첫째편으로 시작해 노자 한비 열전, 오자서 열전 등 총 70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기』를 집필한 목적과 의도를 자세히 밝히고 있는 제130권 태사공자서로 끝을 맺고 있다. 사마천은 백이 열전에서 주나라 백성이 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죽은 백이·숙제의 비통한 운명을 논하며 부조리한 세상사에 대한 울분을 토로하고, 아울러 궁형(宮刑)을 당한 자신의 억울한 처지와 유사하다는 데서 비롯된 동류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관포지교(管鮑之交)’나 ‘토사구팽(兎死狗烹)’과 같은 고사성어로도 널리 알려진 이 역사서는 이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 생명력을 잃지 않고 더욱 빛을 발하며 동서양의 고전으로 손꼽히고 있다.

「위표 · 팽월 열전」 위표(魏豹)는 서하와 상당의 군사를 거두어 한왕을 따라 항우를 공격하여 팽성에 이르렀다. 팽월은 양나라를 침략하여 항우를 괴롭혔다. 「경포 열전」 경포가 회남 땅을 가지고 초나라를 배반하고 한나라에 돌아가니, 한나라는 그를 이용하여 초나라의 대사마 주은(周殷)을 얻고 마침내는 항우를 해하에서 무찔렀다. 「회음후 열전」 초나라 군이 경(京)과 삭(索) 사이에서 한나라 군을 압박할 때, 한신은 위(魏)와 조나라를 빼앗고, 연나라와 제나라를 평정했다. 이로써 천하를 3분하고 그 둘을 차지함으로써 항우를 멸망시켰다. 「한신 · 노관 열전」 초나라와 한나라가 공과 낙양에서 서로 대치하고 있을 때, 한왕 신(信)은 한나라를 위해 영천을 아우르고, 노만은 항적의 식량 보급로를 끊었다. 「전담 열전」 제후들이 항왕을 배반했지만, 오직 제나라의 전횡은 항우와 성양에서 싸웠다. 한나라 군이 그 틈을 타서 샛길로 팽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번 · 역 열전」 성을 공격하고 야전을 하여 군공을 세우고 돌아와 보고하는 데에는 번쾌와 역상이 뛰어났다. 채찍을 들어 병마를 지휘한 공이 있고, 또 한왕과 더불어 위기를 벗어난 적도 있었다. 「장 승상 열전」 한 왕실은 비로소 안정을 얻었으나, 문치(文治)의 조리는 아직 명확하지 못했다. 장창은 주계관이 되어 도량형을 정비하고 음률과 역법을 개편하였다. 「역생 · 육고 열전」 변설로써 맺고 사자가 되어 유세로써 제후들과 결속하여 회유했다. 제후들은 모두 그와 친해져 한나라로 돌아와 그 번병이나 보신이 되었다. 「부 · 근 · 괴성 열전」 진 · 초나라의 일은 오직 주설만이 있으니, 그는 항상 고조를 따라 제후를 평정했기 때문에 그것을 상세히 알고 있다. 「유경 · 숙손통 열전」 강한 호족들을 이주시켜 관중에 도읍을 정하고, 흉노와 화친하였으며, 조정의 의례를 밝혀 종묘의 의법(儀法)을 제정하였다. 「계포 · 난포 열전」 계포는 강한 성격을 억누르고 부드러워져 마침내 한나라 신하가 되었다. 난공은 고조의 위세에 위협을 받으면서도 죽은 팽월을 배신하지 않았다. 「원앙 · 조조 열전」 감히 군주의 싫어하는 안색에도 개의치 않고 군주의 언행을 도의에 맞게 관철시키고 자신의 안위를 돌아보지 않고 나라를 위해 영구한 계획을 수립하였다. 「장석지 · 풍당 열전」 법을 지켜 대의를 잃지 않고 옛 현인의 덕에 관해 말함으로써 군주로 하여금 현명함을 더하게 했다. 「만석 · 장숙 열전」 돈후하고 자애롭고 효성스러우며, 말은 어눌하지만 행동은 민첩하여 겸양에 힘써 군자와 장자의 면모를 갖추려고 노력하였다. 「전숙 열전」 전숙은 절개와 지조를 지켜 강직하고 의로움은 청렴하다고 하기에 충분하고 행실은 족히 현인들을 권장하기에 충분했다. 권세 있는 지위에 있어도 이치에 어긋나는 것에 굽히지 않았다. 「편작 · 창공 열전」 편작은 의술을 논하여 방술(方術: 의술)하는 사람들의 종주가 되었다. 그 의술은 매우 정밀하고 밝아 후세 사람들이 그의 치료법을 준수하였지만, 그 원칙을 바꿀 수 없었고, 창공은 그에 근접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출간일

전자책 : 2024-10-25

파일 형식

ePub(17.75 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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