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자격이지만 무쓸모는 되기 싫어.40대 경단녀의 취업 뽀개기
강씨<각성>
또래보다 약하게 태어난 아이는
집보다 병원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을 정도였다.
번잡한 대학병원 대기실이, 진료실이 놀이 공간이었고,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이 엄마와 아빠 다음으로 태어나
제일 자주 본 사람들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마주한 남편과 난, 어쩔 수 없이 맞벌이에서 외벌이가 되기로 결정했다.
언젠가 아이의 면역력이 나아지면, 다시 사회로 나가겠노라 다짐하며 힘든 시간을 견뎠다.
아이 엄마로만 남을 인생이 두렵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날 필요로 하는 사회가 필시 존재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아지기는커녕 막연한 상황의 연속으로 불안감만 커졌다. 엄마라는 왕관의 무게가 견디기 힘들었고,
그럴 때마다 육퇴 후 갖는 일탈 성 알코올이 간절했다.
그런데 신의 장난인지 남편과 함께 마신 맥주가 사랑의 묘약으로 둔갑한 탓에 물은 엎어졌고,
엎어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게 되었다.
하나만 낳아 잘 키우려 했건만,
내 나이 서른둘에 그렇게 ‘딸 연년생 엄마’ 가 되었다. 더불어 사회로 나가려 했던 계획은 결국 저 멀리 둔 채, 잊혀 갈 수밖에 없었다.
한평생 전업주부로 살아온 엄마처럼 되지 않으려 다짐했었기에 스스로가 더욱 원망스러웠다.
아들만 잔뜩인 집에서 고명딸로 태어나 귀하게 자랐을 엄마가 억척스럽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과 희생을 치러야 했을까 생각하면 안쓰러움이 앞서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난 그 길이 싫었다.
누군가를 위한 삶이 아닌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었다.
엄마도 한때는 나처럼 꿈 많은 소녀였겠지.
나는 그 소녀의 꿈을 갉아먹으며 자랐기에
더 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녀의 꿈을 갉아먹고 자란 소녀는 꿈을 이루지 못했고, 대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 둘을 안고, 업고 나가면 지나는 사람들로부터 종종 이런 이야기들을 듣곤 했다.
"아이고.. 엄마가 힘들겠네~"
"연년생인가 봐~ 쌍둥이보다 힘들다던데..."
모두의 우려 속에서도 나는, 힘들다는 연년생 육아를 단 하루도, 한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 역할에 빈틈을 허용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등바등할수록 내가 세상에, 그리고 사회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현실이 때때로 서글펐다.
그러다 문득, 서글프다고 마냥 주저앉기에는
젊음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선택에 후회만 하며 세월을 보내기에는
내가 너무 아까운 것 같았다.
그래서
용기 내어 다시 꿈꾸기로 했다.
비록 소녀에서 아줌마가 된 지금이라 할지라도.
비록 10년의 경력 단절로 자격이 전무한 경단녀라 할지라도.
일단 부딪혀 보는 거다.
죽기 살기로.
‘날 위해서’
또래보다 약하게 태어난 아이는
집보다 병원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을 정도였다.
번잡한 대학병원 대기실이, 진료실이 놀이 공간이었고,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이 엄마와 아빠 다음으로 태어나
제일 자주 본 사람들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마주한 남편과 난, 어쩔 수 없이 맞벌이에서 외벌이가 되기로 결정했다.
언젠가 아이의 면역력이 나아지면, 다시 사회로 나가겠노라 다짐하며 힘든 시간을 견뎠다.
아이 엄마로만 남을 인생이 두렵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날 필요로 하는 사회가 필시 존재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아지기는커녕 막연한 상황의 연속으로 불안감만 커졌다. 엄마라는 왕관의 무게가 견디기 힘들었고,
그럴 때마다 육퇴 후 갖는 일탈 성 알코올이 간절했다.
그런데 신의 장난인지 남편과 함께 마신 맥주가 사랑의 묘약으로 둔갑한 탓에 물은 엎어졌고,
엎어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게 되었다.
하나만 낳아 잘 키우려 했건만,
내 나이 서른둘에 그렇게 ‘딸 연년생 엄마’ 가 되었다. 더불어 사회로 나가려 했던 계획은 결국 저 멀리 둔 채, 잊혀 갈 수밖에 없었다.
한평생 전업주부로 살아온 엄마처럼 되지 않으려 다짐했었기에 스스로가 더욱 원망스러웠다.
아들만 잔뜩인 집에서 고명딸로 태어나 귀하게 자랐을 엄마가 억척스럽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과 희생을 치러야 했을까 생각하면 안쓰러움이 앞서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난 그 길이 싫었다.
누군가를 위한 삶이 아닌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었다.
엄마도 한때는 나처럼 꿈 많은 소녀였겠지.
나는 그 소녀의 꿈을 갉아먹으며 자랐기에
더 잘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녀의 꿈을 갉아먹고 자란 소녀는 꿈을 이루지 못했고, 대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이 둘을 안고, 업고 나가면 지나는 사람들로부터 종종 이런 이야기들을 듣곤 했다.
"아이고.. 엄마가 힘들겠네~"
"연년생인가 봐~ 쌍둥이보다 힘들다던데..."
모두의 우려 속에서도 나는, 힘들다는 연년생 육아를 단 하루도, 한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 역할에 빈틈을 허용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등바등할수록 내가 세상에, 그리고 사회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현실이 때때로 서글펐다.
그러다 문득, 서글프다고 마냥 주저앉기에는
젊음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선택에 후회만 하며 세월을 보내기에는
내가 너무 아까운 것 같았다.
그래서
용기 내어 다시 꿈꾸기로 했다.
비록 소녀에서 아줌마가 된 지금이라 할지라도.
비록 10년의 경력 단절로 자격이 전무한 경단녀라 할지라도.
일단 부딪혀 보는 거다.
죽기 살기로.
‘날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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