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대한 개츠비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정서 옮김『위대한 개츠비』가 지금까지 ‘위대한’ 소설로 남아 있는 것은 미국의 혼돈스럽고 일견 퇴폐적인 사회상을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방식에 있어 대단히 서정적이며 아름다운 문체에 완벽한 소설적 기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엇이나 거트루드 스타인이 이 소설의 출간 당시부터 ‘거의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평가한 것은 그래서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위대한 개츠비』는 어떤 작품이었을까? 주인공 개츠비를 불법적 방법으로 돈을 벌어 상류사회에 진입한, 부도덕한 인간으로 이해하고, 데이지라는 옛 연인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다 파멸하는 이야기로 인식하고 있다. 그 결과 이 작품의 제목에서 주인공 개츠비를 가리키는 ‘위대한The Great’을 이해하기 힘들자 그것을 역설적인 표현이라고 설명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터무니없는 오해가 생기고 지금까지 바로 잡히지 않고 있었던 걸까? 번역자 이정서 씨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번역자들이 원저자가 사용한 단어와 문장을 오독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번역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이정서 씨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앞서 책을 절판시키고 원문과 역문을 정확히 일치 시키는 번역서를 내놓았덨다. 한쪽에 원문을 한쪽에 번역문을 싣는 파격적인 편집의 『위대한 개츠비』가 그것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위대한 개츠비』는 어떤 작품이었을까? 주인공 개츠비를 불법적 방법으로 돈을 벌어 상류사회에 진입한, 부도덕한 인간으로 이해하고, 데이지라는 옛 연인에게 병적으로 집착하다 파멸하는 이야기로 인식하고 있다. 그 결과 이 작품의 제목에서 주인공 개츠비를 가리키는 ‘위대한The Great’을 이해하기 힘들자 그것을 역설적인 표현이라고 설명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왜 이런 터무니없는 오해가 생기고 지금까지 바로 잡히지 않고 있었던 걸까? 번역자 이정서 씨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번역자들이 원저자가 사용한 단어와 문장을 오독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번역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에 따라 이정서 씨는 그렇지 않다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앞서 책을 절판시키고 원문과 역문을 정확히 일치 시키는 번역서를 내놓았덨다. 한쪽에 원문을 한쪽에 번역문을 싣는 파격적인 편집의 『위대한 개츠비』가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