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학, 2022년 상반기호(반년간호)인문지리서에 나타난 조선의 시문(詩文)
하응백인문지리서에 나타난 조선의 시문(詩文)
1392년 조선 개국 이후, 조선 정부는 각종 서적 편찬사업에 의욕적으로 뛰어들었다. 왕권이 안정되고 집현전 학사들을 중심으로 한 연구가 진척되면서 세종 때는 국책사업으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농사직설(農事直設)』,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 등을 편찬하였다. 이 편찬사업은 조선왕가 창업의 정당성을 표방하는 홍보성 책자, 백성들의 삶에 이익이 되는 실용서, 한글 창제를 뒷받침하는 언해류, 통치의 기본 자료인 인문지리지 등으로 분야를 나눌 수 있다. 세종 때의 서적 발간 사업은 성종 때에 이르면 더욱 확고한 결실을 이루게 된다. 『경국대전(經國大典)』, 『동국통감(東國通鑑)』, 『악학궤범(樂學軌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 『동국여지승람』(1481년)은 세종 때의 『팔도지리지』를 확대 증보한 인문지리지로 조선 8도 각 지역의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이 책이 나온 후 증보(增補)와 개수(改修)를 거쳐 1530년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편찬되면서 8도 지리지 편찬사업은 조선 왕조 개국 후 약 140년 만에 마무리가 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편집체계를 보면 조선을 팔도로 나누고 팔도의 각 고을에 대해, 연혁, 관원, 군명, 성씨, 산천, 토산, 봉수, 학교, 누정(樓亭), 역원, 불우, 사묘, 능묘, 고적, 명환, 인물, 우거, 제영(題詠)을 차례로 수록하고 있다. 이렇게 편집한 이유에 대해 『동국여지승람』의 서문을 쓴 서거정은 “연혁(沿革)을 먼저 쓴 것은 한 고을의 흥폐를 먼저 몰라서는 안 되기 때문이고, 풍속과 형승을 다음에 쓴 것은 풍속은 한 고을을 유지시키는 바이며 ...(중략)... 참(站)과 역(驛)을 벌여 놓은 것은 사명(使命)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인물(人物)은 과거의 어진 이를 기록한 것이고, 명환(名宦)은 장래에 잘하기를 권한 것입니다. 또 제영(題詠)을 마지막에 둔 것은 물상(物像)을 읊조리며 왕화(王化)를 노래하여 칭송함은 실로 시(詩)와 문(文)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편집체계는 현대의 시·군지 편찬체계와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치밀하게 잘 설계되어 있다. 한 고을의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 통치의 기본 자료가 됨은 물론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여행지침서로도 손색이 없다.
『동국여지승람』은 이후 영조 때 새로 편집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도 그 틀이 그대로 유지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물론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시대 상황이 바뀌면서 도로(道路), 균세(均稅), 대동(大同)과 같이 추가된 것도 있다.
『여지도서』를 포함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대단히 놀라운 건, 각 고을을 대표할만한 문학작품을 다양하게 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경상도 북부의 작은 고을 예천군 ‘누정(樓亭)’편에서는 관아 객사 부근에 있었던 쾌빈루를 설명하면서 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시를 소개한다. 서거정의 시가 쾌빈루에 걸려있었다. 사찰 항목에는 대곡사를 설명하면서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십칠일에 대곡사에 들어가다(十七日 入大谷寺)
돌길이 높고 낮아 울퉁불퉁한데
한가하게 과하마(果下馬) 타고 채찍질해 간다
가벼운 바람은 조용히 연기 빛을 쓸어가고
지는 달은 새벽 빛과 함께 밝구나
짧은 기슭 앞 머리에서 절 방(榜)을 보고
비낀 배 곁에서 여울 이름을 묻는다
외로운 마을 어느 곳에서 부는지 쓸쓸한 피리 소리
타향에서 병을 앓으니 쉽게 슬퍼지는구나
石路高低平不平 閑騎果下彈鞭行 輕風靜掃烟光去 落月時兼曉色明
短麓前頭看寺榜 橫舟側畔問灘名 孤材何處吹寒笛 抱疾他鄕易惱情
(번역은 한국고전번역원, 이식)
17일에 대곡사에 들어가서 느낀 감회를 적은 시인데 이 17일은 1196년 8월 17일이다. 이규보는 29세 때 경상도 지역에 머물면서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남유시(南遊詩) 90여 편을 남겼다. 위의 시는 그중 한 편이다.
많은 설명보다 시 한 편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위의 시가 그렇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편찬자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구구절절 사진을 넣은 긴 설명보다 간략한 시가 더 현장감 있다. 시간과 종이를 절약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지방 통치의 기본 자료를 수많은 문학 자료로 가미하여 편집한 조선 사대부들의 시문(詩文)에 대한 정신과 신뢰가 이 정도였다. 이 정도면 가히 조선을 문학의 나라였다고 부를 만하다. 그런 전통 속에 우리 시(詩)가, 우리 문학이 있다.
『한국문학』 2022년 상반기호는 풍성하다. 신작시 특집은 새로운 감각으로 서정시의 영역을 개척했던 장석남의 시를 초대했다. 평을 쓴 박은지 시인의 글도 읽을 만하다.
이번 호에는 소설이 특히 매혹적이다. 이승우, 이기호, 김중혁, 이만교, 이장욱 제씨의 작품을 담았다. 시도 못지않다. 김윤배, 송재학, 문태준, 송승언, 여세실, 박균수 제씨의 신작시도 독자의 입맛에 맞을 것이다. 고인환 교수의 소설평은 박금산의 『AI가 쓴 소설』,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 손원평의 『타인의 집』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이병철 시인의 시평은 이시영의 『나비가 돌아왔다』, 김유태의 『그 일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김유석의 『이주여행자』를 주목했다. 신영배, 윤성희, 김성중의 산문도 흥미롭다. ‘대학생 창작교실’은 아주대학교 국문과 편이다. 작품을 선하고 평을 해주신 문혜원, 정두영 두 분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1392년 조선 개국 이후, 조선 정부는 각종 서적 편찬사업에 의욕적으로 뛰어들었다. 왕권이 안정되고 집현전 학사들을 중심으로 한 연구가 진척되면서 세종 때는 국책사업으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농사직설(農事直設)』,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 등을 편찬하였다. 이 편찬사업은 조선왕가 창업의 정당성을 표방하는 홍보성 책자, 백성들의 삶에 이익이 되는 실용서, 한글 창제를 뒷받침하는 언해류, 통치의 기본 자료인 인문지리지 등으로 분야를 나눌 수 있다. 세종 때의 서적 발간 사업은 성종 때에 이르면 더욱 확고한 결실을 이루게 된다. 『경국대전(經國大典)』, 『동국통감(東國通鑑)』, 『악학궤범(樂學軌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 『동국여지승람』(1481년)은 세종 때의 『팔도지리지』를 확대 증보한 인문지리지로 조선 8도 각 지역의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이 책이 나온 후 증보(增補)와 개수(改修)를 거쳐 1530년에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편찬되면서 8도 지리지 편찬사업은 조선 왕조 개국 후 약 140년 만에 마무리가 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편집체계를 보면 조선을 팔도로 나누고 팔도의 각 고을에 대해, 연혁, 관원, 군명, 성씨, 산천, 토산, 봉수, 학교, 누정(樓亭), 역원, 불우, 사묘, 능묘, 고적, 명환, 인물, 우거, 제영(題詠)을 차례로 수록하고 있다. 이렇게 편집한 이유에 대해 『동국여지승람』의 서문을 쓴 서거정은 “연혁(沿革)을 먼저 쓴 것은 한 고을의 흥폐를 먼저 몰라서는 안 되기 때문이고, 풍속과 형승을 다음에 쓴 것은 풍속은 한 고을을 유지시키는 바이며 ...(중략)... 참(站)과 역(驛)을 벌여 놓은 것은 사명(使命)을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인물(人物)은 과거의 어진 이를 기록한 것이고, 명환(名宦)은 장래에 잘하기를 권한 것입니다. 또 제영(題詠)을 마지막에 둔 것은 물상(物像)을 읊조리며 왕화(王化)를 노래하여 칭송함은 실로 시(詩)와 문(文)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편집체계는 현대의 시·군지 편찬체계와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치밀하게 잘 설계되어 있다. 한 고을의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 통치의 기본 자료가 됨은 물론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여행지침서로도 손색이 없다.
『동국여지승람』은 이후 영조 때 새로 편집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도 그 틀이 그대로 유지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물론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시대 상황이 바뀌면서 도로(道路), 균세(均稅), 대동(大同)과 같이 추가된 것도 있다.
『여지도서』를 포함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대단히 놀라운 건, 각 고을을 대표할만한 문학작품을 다양하게 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경상도 북부의 작은 고을 예천군 ‘누정(樓亭)’편에서는 관아 객사 부근에 있었던 쾌빈루를 설명하면서 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시를 소개한다. 서거정의 시가 쾌빈루에 걸려있었다. 사찰 항목에는 대곡사를 설명하면서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시 한 편을 소개한다.
십칠일에 대곡사에 들어가다(十七日 入大谷寺)
돌길이 높고 낮아 울퉁불퉁한데
한가하게 과하마(果下馬) 타고 채찍질해 간다
가벼운 바람은 조용히 연기 빛을 쓸어가고
지는 달은 새벽 빛과 함께 밝구나
짧은 기슭 앞 머리에서 절 방(榜)을 보고
비낀 배 곁에서 여울 이름을 묻는다
외로운 마을 어느 곳에서 부는지 쓸쓸한 피리 소리
타향에서 병을 앓으니 쉽게 슬퍼지는구나
石路高低平不平 閑騎果下彈鞭行 輕風靜掃烟光去 落月時兼曉色明
短麓前頭看寺榜 橫舟側畔問灘名 孤材何處吹寒笛 抱疾他鄕易惱情
(번역은 한국고전번역원, 이식)
17일에 대곡사에 들어가서 느낀 감회를 적은 시인데 이 17일은 1196년 8월 17일이다. 이규보는 29세 때 경상도 지역에 머물면서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남유시(南遊詩) 90여 편을 남겼다. 위의 시는 그중 한 편이다.
많은 설명보다 시 한 편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위의 시가 그렇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편찬자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구구절절 사진을 넣은 긴 설명보다 간략한 시가 더 현장감 있다. 시간과 종이를 절약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지방 통치의 기본 자료를 수많은 문학 자료로 가미하여 편집한 조선 사대부들의 시문(詩文)에 대한 정신과 신뢰가 이 정도였다. 이 정도면 가히 조선을 문학의 나라였다고 부를 만하다. 그런 전통 속에 우리 시(詩)가, 우리 문학이 있다.
『한국문학』 2022년 상반기호는 풍성하다. 신작시 특집은 새로운 감각으로 서정시의 영역을 개척했던 장석남의 시를 초대했다. 평을 쓴 박은지 시인의 글도 읽을 만하다.
이번 호에는 소설이 특히 매혹적이다. 이승우, 이기호, 김중혁, 이만교, 이장욱 제씨의 작품을 담았다. 시도 못지않다. 김윤배, 송재학, 문태준, 송승언, 여세실, 박균수 제씨의 신작시도 독자의 입맛에 맞을 것이다. 고인환 교수의 소설평은 박금산의 『AI가 쓴 소설』,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 손원평의 『타인의 집』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이병철 시인의 시평은 이시영의 『나비가 돌아왔다』, 김유태의 『그 일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김유석의 『이주여행자』를 주목했다. 신영배, 윤성희, 김성중의 산문도 흥미롭다. ‘대학생 창작교실’은 아주대학교 국문과 편이다. 작품을 선하고 평을 해주신 문혜원, 정두영 두 분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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