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학, 2023년 상반기호(반년간호)
하응백난파선 이후의 문학
1.
3년에 걸쳐 인류는 제대로 숨을 못 쉬고 살았다. 2022년 겨울, 긴 터널의 끝에 이르니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생물의 진화 단계에서 보자면 인류는 수백만 년 동안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를 지나 최근 몇 년은 호모 마스크스로 살았다. 이제 마스크를 완전히 벗으면 인류는 새로운 종이 된다. 호모 넌마스크스(homo non-masks)로 새롭게 탄생한다…….
사람은 숨을 쉬어야 산다. 꽃들도 숨을 쉬어야 산다. 꽃이 비닐 포장에 갇혀 있다가 확 숨을 내쉬는 것을 한 원로 시인은 이렇게 표현했다.
원주에 둥지 틀고 사는 후배 시인이
코로나 확장세 뚫고 히아신스 한 다발을 보내왔다.
비닐 옷 벗기고 꽃병을 담아 탁자에 올리자
바로 이때다! 꽃들이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내쉬는가,
확 터지는 향기, 정신이 어찔어찔.
(황동규의 시 「히아신스」 부분, 『문학동네』, 2021년 겨울호)
향기의 발산은 우선 육체적이다. 육체는 해방되어 자유를 갈망한다. 공간이동의 자유가 이토록 그리웠던 적은 드물었다. 국내 여행은 물론 해외여행도 봇물 터지듯 활성화된다. 우크라이나전쟁으로 기름값이 대폭 오르고 무역수지가 아무리 적자를 기록해도 공간 이동에 대한 갈망은 멈출 수가 없다. 2022년 겨울을 지나면서 TV 홈쇼핑마다 여행상품이 즐비하게 나열된다.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
2.
난파선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딱 10년 전인 2012년 겨울 소설가 김영하는 어느 신인문학상 시상식장에서 이런 인사말로 화두를 열었다. 그날 난파선에 오른 인물은 『체인지킹의 후예』로 신인상을 받은 소설가 이영훈이다. 그가 탄 난파선은 아직 완전히 침몰하지 않았나? 그가 이번 호에 단편 「선생님이 죽었다」를 보내왔다.
한 소설가의 죽음을 다룬 소설이다. 유명 소설가가 죽고, 그의 제자 소설가 다섯이 모여, 유고작인 선생의 마지막 작품을 발표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치열한 난상토론을 벌인다. 소설 전개로 미루어보면 선생의 삶은 그다지 아름답지 못했다. 오히려 추문이 따라다니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해도 선생이 돌아가셨으면 당연히 그의 작품을 발표해야지, 왜 그의 작품을 발표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제자가 있는 걸까? 그 소설은 제자에 의한 위작은 아닐까? 죽은 선생의 소설은 텍스트의 아우라가 사라진 시대의 문학, 난파선의 문학을 상징한다.
3.
이번 호 『한국문학』은 난파선이 아니다.
‘비평의 눈’에서 신예 평론가 이병국은 박지영, 이현수, 김연수의 소설을 분석했다. 특히 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분석하는 이병국의 눈은 예리하다. 평론가 김수이는 최문자, 이대흠, 홍신선, 조정, 정현종 제씨의 신작 시집에 대한 온기 있는 평문을 보내왔다. 문예지에서 시와 소설에 대한 작품 평이 차지하는 위상은 각별하다. 이병국과 김수이 평론가는 이번 호를 포함 4호 동안 소설평과 시평을 전개한다. 두 분의 노역에 독자 여러분의 격려를 부탁드린다.
신작 소설을 주신 기준영, 이영훈, 임현석, 장정희 작가와 신작 시를 주신 김안, 김주대, 신동옥, 양안다, 오산하 시인에게 감사드린다. 신작 소설과 신작 시에는 작은 세상이 담겨 있다.
이번 호 신작시 특집은 2022년 미국 루시엔 스트릭상을 수상한 이영주 시인 편이다. 이영주 시인은 2000년 등단 이후 5권의 시집을 상재하면서 최근에는 관심 영역을 “바이러스를 통한 새로운 패러다임과 관련된 아포칼립스(멸망, 재앙)까지” 확장하고 있다. 까다로운 시를 이해하기 쉽게 풀이해준 분은 소유정 평론가다.
최근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장안의 지가를 올리고 있는 정지아 작가의 ‘작가가 만난 최고의 고전’은 왜 정지아가 베스트셀러 작가인가를 확연히 알게 해주는 글이기도 하다. 그 재미없는 소설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를 이토록 재미있게 평한 글은 일찍이 읽지를 못했다.
박솔뫼 작가의 ‘작가방에 머무는 상상력의 편린들’은 신비롭고, 안희연 시인의 ‘작품 속 마음 풍경’은 싱그럽다. ‘지금 우리 문화는’은 이른바 K-클래식 융성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 글이다. 오광수 시인의 기자 관록이 빛나는 글이다. 대학생 창작교실은 협성대학교 편이다. 구광본, 김병호 두 분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배가 난파하면 다른 배를 타면 된다. 문학은 장르와 형태를 달리하면서 변신을 거듭해왔다. 서정(抒情·lyric)과 서사(敍事·Narrative)는 호모 사피엔스 이후 인간의 기본 욕구다.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노래하고 이야기한다. 마스크를 쓰고도, 마스크를 벗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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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에 걸쳐 인류는 제대로 숨을 못 쉬고 살았다. 2022년 겨울, 긴 터널의 끝에 이르니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생물의 진화 단계에서 보자면 인류는 수백만 년 동안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를 지나 최근 몇 년은 호모 마스크스로 살았다. 이제 마스크를 완전히 벗으면 인류는 새로운 종이 된다. 호모 넌마스크스(homo non-masks)로 새롭게 탄생한다…….
사람은 숨을 쉬어야 산다. 꽃들도 숨을 쉬어야 산다. 꽃이 비닐 포장에 갇혀 있다가 확 숨을 내쉬는 것을 한 원로 시인은 이렇게 표현했다.
원주에 둥지 틀고 사는 후배 시인이
코로나 확장세 뚫고 히아신스 한 다발을 보내왔다.
비닐 옷 벗기고 꽃병을 담아 탁자에 올리자
바로 이때다! 꽃들이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내쉬는가,
확 터지는 향기, 정신이 어찔어찔.
(황동규의 시 「히아신스」 부분, 『문학동네』, 2021년 겨울호)
향기의 발산은 우선 육체적이다. 육체는 해방되어 자유를 갈망한다. 공간이동의 자유가 이토록 그리웠던 적은 드물었다. 국내 여행은 물론 해외여행도 봇물 터지듯 활성화된다. 우크라이나전쟁으로 기름값이 대폭 오르고 무역수지가 아무리 적자를 기록해도 공간 이동에 대한 갈망은 멈출 수가 없다. 2022년 겨울을 지나면서 TV 홈쇼핑마다 여행상품이 즐비하게 나열된다.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
2.
난파선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딱 10년 전인 2012년 겨울 소설가 김영하는 어느 신인문학상 시상식장에서 이런 인사말로 화두를 열었다. 그날 난파선에 오른 인물은 『체인지킹의 후예』로 신인상을 받은 소설가 이영훈이다. 그가 탄 난파선은 아직 완전히 침몰하지 않았나? 그가 이번 호에 단편 「선생님이 죽었다」를 보내왔다.
한 소설가의 죽음을 다룬 소설이다. 유명 소설가가 죽고, 그의 제자 소설가 다섯이 모여, 유고작인 선생의 마지막 작품을 발표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치열한 난상토론을 벌인다. 소설 전개로 미루어보면 선생의 삶은 그다지 아름답지 못했다. 오히려 추문이 따라다니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해도 선생이 돌아가셨으면 당연히 그의 작품을 발표해야지, 왜 그의 작품을 발표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제자가 있는 걸까? 그 소설은 제자에 의한 위작은 아닐까? 죽은 선생의 소설은 텍스트의 아우라가 사라진 시대의 문학, 난파선의 문학을 상징한다.
3.
이번 호 『한국문학』은 난파선이 아니다.
‘비평의 눈’에서 신예 평론가 이병국은 박지영, 이현수, 김연수의 소설을 분석했다. 특히 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분석하는 이병국의 눈은 예리하다. 평론가 김수이는 최문자, 이대흠, 홍신선, 조정, 정현종 제씨의 신작 시집에 대한 온기 있는 평문을 보내왔다. 문예지에서 시와 소설에 대한 작품 평이 차지하는 위상은 각별하다. 이병국과 김수이 평론가는 이번 호를 포함 4호 동안 소설평과 시평을 전개한다. 두 분의 노역에 독자 여러분의 격려를 부탁드린다.
신작 소설을 주신 기준영, 이영훈, 임현석, 장정희 작가와 신작 시를 주신 김안, 김주대, 신동옥, 양안다, 오산하 시인에게 감사드린다. 신작 소설과 신작 시에는 작은 세상이 담겨 있다.
이번 호 신작시 특집은 2022년 미국 루시엔 스트릭상을 수상한 이영주 시인 편이다. 이영주 시인은 2000년 등단 이후 5권의 시집을 상재하면서 최근에는 관심 영역을 “바이러스를 통한 새로운 패러다임과 관련된 아포칼립스(멸망, 재앙)까지” 확장하고 있다. 까다로운 시를 이해하기 쉽게 풀이해준 분은 소유정 평론가다.
최근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장안의 지가를 올리고 있는 정지아 작가의 ‘작가가 만난 최고의 고전’은 왜 정지아가 베스트셀러 작가인가를 확연히 알게 해주는 글이기도 하다. 그 재미없는 소설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를 이토록 재미있게 평한 글은 일찍이 읽지를 못했다.
박솔뫼 작가의 ‘작가방에 머무는 상상력의 편린들’은 신비롭고, 안희연 시인의 ‘작품 속 마음 풍경’은 싱그럽다. ‘지금 우리 문화는’은 이른바 K-클래식 융성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 글이다. 오광수 시인의 기자 관록이 빛나는 글이다. 대학생 창작교실은 협성대학교 편이다. 구광본, 김병호 두 분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배가 난파하면 다른 배를 타면 된다. 문학은 장르와 형태를 달리하면서 변신을 거듭해왔다. 서정(抒情·lyric)과 서사(敍事·Narrative)는 호모 사피엔스 이후 인간의 기본 욕구다.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든 노래하고 이야기한다. 마스크를 쓰고도, 마스크를 벗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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