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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원의 빛크툴루 신화 연대기
아서 매컨
“러브크래프트 서클”은 H. P. 러브크래프트를 중심으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일군의 작가와 그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소개하려는 시도입니다.

「심원의 빛」은 탐정 다이슨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 솔즈베리에게 일명 ‘할레스던 사건’에 대해 말해주는 형식을 취하는데요. 즉 런던의 변두리 지역인 할레스던에서 의사인 스티븐 블랙 박사가 자신의 아내 아그네스를 살해했다는 의혹에 관한 것이죠. 다이슨은 할레스던에 들렀다가 이 블랙 박사의 집 창문에서 당시에는 실종됐다고 알려진 아그네스를 목격하고 큰 충격에 빠집니다. 사람의 얼굴에서 악마를 봤기 때문인데요. 결국 의혹은 아그네스의 실제 사망으로 이어져 수사가 이루어지나 부검 결과, 타살 혐의 없이 자연사로 결론 납니다. 그런데 다이슨은 부검 과정에서 나온 충격적인 상황 즉 사망자의 ‘뇌 조직이 인간이 아니라 동물의 것처럼 변형되어 있다’는 사실을 입수하는데요. 뇌의 변형은 매컨의 작품들에서 심심찮게 접하게 되는 ‘바디 호러’와도 관련이 있죠. 다이슨이 사건의 핵심에 근접할수록 미친 과학자가 미친 실험에 자신의 아내까지 희생시키는 극단적인 광기가 드러나는데요.

이 작품엔 앞서 소개한 「샤이닝 피라미드」처럼 매컨의 오컬트 탐정 ‘다이슨’이 등장합니다. 사실 매컨의 오컬트 탐정은 러브크래프트 서클 내로 한정하더라도 윌리엄 호프 호지슨이나 앨저넌 블랙우드에 비해 정교함이 많이 부족하죠. 다이슨이 등장하는 매컨의 작품은 중단편 4편 정도입니다. 그만큼 호지슨이나 블랙우드처럼 체계를 논할 수준이 아니고 매컨이 그걸 의도하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보니 탐정을 내세웠지만 문제의 추리 과정이나 해결 방식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매컨의 탐정 다이슨은 우연에만 의존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죠.

매컨은 중요한 순간마다 다이슨을 런던 거리로 내보내 배회하게 만드는데요. 그러면 어디선가 홀연히 단서가 나타나거나 바람에 날아와 다이슨의 손에 쏙 들어옵니다. 더구나 매번 사건의 전후 과정을 설명해주는 누군가의 편지도 다이슨의 수고를 덜어주죠. 그래서 코난 도일과 동시대에 런던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작품에서 셜록 홈즈를 기대한다면 여지없이 실망할 겁니다. 매컨이 보여주려는 건 공포인데요. 그래서 신비, 암시, 모호함, 심지어 우연까지 독자에게 번잡하고 피곤한 부담을 주긴 하나, 공포를 가져오는 디딤돌이 됩니다. 물론 매컨처럼 잘 활용한다면 말이죠.

아서 매컨(Arthur Machen)
판타지, 호러 작가. 1863년에 작지만 유서 깊은 칼레온(Caerleon)에서 태어났다. 칼레온은 영국에서 가장 흥미로운 로마 유적지이자 아서왕의 전설(카멜롯과 칼레온이 동일시되는)이 숨 쉬는 곳이다. 헤리퍼드 가톨릭 학교를 마쳤으나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은 꿈도 꾸지 못하였다. 그리고 매컨은 그 무렵 이미 글쓰기에 매료되어서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다. 문학적 가능성을 보여준 장시 『엘레우시나Eleusina』를 자비로 출판한 이후 1884년에 런던으로 향한다. 런던에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며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생활을 한다. 이후 수년 동안 작가로서의 평가는 꾸준히 높아졌으나, 경제적 어려움은 그대로였다. 1894년 『위대한 신, 판The Great God Pan』에 이어 이듬해에는 『세 사칭자The Three Imposters』 등 대표작들이 연달아 출간되었다. 이 공포 소설들은 이후 러브크래프트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20세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기간, 매컨은 오스카 와일드 같은 런던의 문학 거물들과 교류를 넓혀가면서 언론관련 일과 작가로 생계를 꾸려간다. 1887년에 결혼했으나, 1899년 아내 에이미가 암으로 사망한다. 큰 절망에 휩싸인 매컨은 밤이고 낮이고 런던 시내를 정처 없이 배회한다. 이런 방황의 시기에 무작정 걸으면서 건물과 거리를 바라보다가 불현듯 평범해 보이는 일상의 공간 너머에 숨겨진 삶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때 오컬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오컬트 단체인 황금 여명회(Hermetic Order of the Golden Dawn)에 가입하기도 한다. 평범과 정상 너머를 바라보는 것을 계기로 이후 그의 작품들은 심리지리학(psycho-geography, 인공적이거나 자연적인 지리환경이 인간의 감정과 행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지리학의 한 분야) 개념이 도입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린 「화이트 피플 The White People」(1904), 은폐된 생명체들을 다룬 1923년작 『땅으로부터Out of the Earth』가 대표적인 예다. 매컨의 최대 회심작이라고 평가되는 『꿈의 언덕The Hill of Dreams』이 집필을 끝낸 지 한참 만에 출간된 것도 20세기 초반(1907)이었다. 1906년에 글쓰기를 재개하면서 1890년대에 완성된 단편 중에서 걸작들을 모아 『영혼의 집The House of Souls』을 출간했다. 1920년대는 매컨의 전성기였다. 전작들까지 연이어 재출간되면서 호응을 얻는다. 그러나 1926년에 접어들면서 이런 열기는 사그라지기 시작했고, 매컨은 여러 신문과 잡지에 자신과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평론을 기고하면서 줄어든 수입원을 만회하려고 노력하지만 또 다시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한다. 결국 80회 생일을 맞아 맥스 비어봄(Max Beerbohm), 엘리어트(T. S. Eliot), 버나드 쇼(Bernard Shaw), 맨스필드(John Masefield), 앨저넌 블랙우드 등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참여한 문학 모금이 성황리에 끝남으로써 매컨은 1947년 사망할 때까지 비교적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옮긴이 미스터고딕 정진영
함께 기획하고 번역하는 팀이다. 미스터 고딕은 숨은 보석 같은 작가와 작품을 만날 때 특히 기쁘다. 그런 기쁨을 출간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정진영은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상상에서는 고딕 소설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잿빛의 종말론적 색채를 좋아하나 현실에서는 하루하루 장밋빛 꿈을 꾸면서 살고 있다. 고전 문학 특히 장르 문학에 관심이 많아서 기획과 번역을 통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와 작품들도 소개하려고 노력 중이다. 스티븐 킹의 『그것』, 『러브크래프트 전집』, 『검은 수녀들』, 『잭 더 리퍼 연대기』, 『광기를 비추는 등대 라이트하우스』 등을 번역했다.

출판사

바톤핑크

출간일

전자책 : 2025-04-26

파일 형식

ePub(6.69 MB)

주제 분류